• 소득 43% 보험료 내고 적자 702조 증가, 이게 연금개혁일까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14일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 2차 숙의토론회 모습. 갈등해결&평화센터 박수선 대표(오른쪽 마이크 든 이)가 전문가 4명을 소개하고 있다. KBS 유튜브 캡처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두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500인이 1, 2차 토론을 끝냈다. 20, 21일 두 차례 더 이어진다. 시민대표단을 설문 조사해 22일 결과를 발표한다. 이를 참고해 연금특위가 법률 개정안을 만들어 내달 29일(21대 국회 회기 종료일)까지 통과시키면 개혁이 일단락된다. 시민대표단은 두 개 안을 두고 토론한다. 1안은 '보험료 13%-소득대체율 50%', 2안은 '보험료 12%-소득대체율 40%'이다. 지금은 보험료 9%,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의 비율) 42%이다. 대체율은 매년 0.5%p 내려가고 있으며 2028년 40%에서 멈춘다. 1안은 더 내고 더 받자는 것이고, 2안은 더 내고 지금처럼 받는 것이다.    신재민 기자  ━  의대정원처럼 오랫동안 뒷전   고령화의 충격이 큰 분야가 국민연금과 보건의료이다. 연금은 먹고 사는 문제이고, 의료는 건강 문제이다. 그런데 그동안 눈앞에 닥친 것에 관심을 뒀지 잘 보이지 않는 미래는 뒷전이었다. 국민연금은 26년째 보험료를 9%로 묶어놨다. 의대정원은 27년 만에 늘리려니 사달이 났다. 국민연금은 2007년 개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매일 800억원의 연금폭탄이 쌓인다"고 호소했다. 당시 소득대체율만 60%에서 40%로 낮췄고, 보험료는 반발이 심해 손대지 못했다. 그래도 큰 진전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매달리느라 국민연금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보건복지부의 개혁안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안 맞다"고 퇴짜를 놓고는 소위 '사지선다' 안을 냈다.      ■  「 국민연금 더 내고 더 받자는데 대체율 올리면 재정 크게 악화 연금액 상승은 그리 크지 않아 "보험료 인상 후 추가 개혁을" 」   윤석열 정부가 시동을 걸었지만 지난해 10월 백지 답안을 내고 멈췄다. 누가 봐도 4·10 총선을 앞둔 정치적 결정이었다. 백지 답안이 패배를 불렀는지, 더 큰 패배를 막았는지 모를 일이다. 공론화 방식으로 연금개혁이 굴러가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을 할 때 보험료를 내 일부는 고령세대를 돕고, 일부는 쌓아뒀다가 본인 노후에 쓴다. 저출산·고령화에다 경제성장이 위축되니까 보험료를 더 내든지,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깎든지 선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1000조원의 적립금이 2055년 고갈된다. 소득의 34%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현세대가 보험료를 더 부담하는 길밖에 없다. 14일 2차 토론에 참여한 한 시민대표는 "지금의 세대가 모든 부담을 공통으로 나눠야 한다는 선배 세대의 어떤 의무감 같은 걸 (느낀다)"고 말했다. 다행히 1, 2안 모두 보험료를 13%, 12%로 올리는 안이다. 소위 '마의 9% 벽'을 깰 수 있다. 그런데 1안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내용도 담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을 되돌리는 안이다. 국민연금의 소득 보장 기능이 약하니 높이자는 주장이다.     ━  "대체율 올리자" vs "그건 개악"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2차 공론화 토론에서 "2030세대가 26년 국민연금에 가입한다고 가정하면 나중에 약 66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노후 최소 생활비(124만원)의 절반 정도이다. 이걸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가입기간도 조금 더 늘려 95만원을 받고, 기초연금을 조금 더 얹어서 노후 최소생활비를 확보하자"고 말했다. 남 교수는 "2030세대가 월 60,70만원 받는 노인이 되느냐, 아니면 100만원 정도 받는 노인이 되느냐 어느 쪽이 자식세대에 짐이 덜 되겠느냐"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국민연금이 허약한 건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1인당 노령연금(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 평균액은 월 62만원이다. 1인 가구 생계급여 상한액(62만여원)과 비슷하다. 연금을 늘리려 1안처럼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는 있다. 그러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1안대로 하면 기금 고갈을 2060년으로 늦추되 그 후 지출이 급격히 늘어난다. 소득대체율 인상효과가 30~40년 후 나타나기 때문이다. 2093년이면 연금 적자가 702조 4000억원 더 늘어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소득의 43%를 보험료로 내야 그해 연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말이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기금 소진 시기를 몇 년 연장하는 대가 치고는 미래세대가 짊어질 비용이 너무 커진다"고 말한다. 또 1안을 시행할 경우 대체율 인상 효과가 고소득층에 더 집중된다. 지역가입자 평균소득(100만원, 25년 가입 가정) 근로자는 연금액이 월 12만5000원 늘지만, 600만원인 사람은 28만1000원 는다.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오건호)     ━  기초연금·퇴직연금으로 보완    2안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현행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려면 보험료가 20%로 올라야 한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는 15%로 올리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12%로 올리면 기금 고갈 시기를 2062년으로 늦추고 2093년 누적적자를 1970조원 줄일 수 있다. 이번에 이 정도 고치고 모자라는 부분은 다음 개혁으로 넘기면 된다. 그러면 노인 빈곤은 어떻게 하나. 오 위원장은 "국민연금만으로 다 보장하기 힘드니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으로 시야를 넓히면 된다. 중하위 계층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으로, 중상위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보장하자"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2024.04.17 00:30

  • 3세 아이 살리려 애쓴 그 병원…"6억에도 의사 구하기 힘들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지난 1일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의사 진료 복귀를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충북 보은군에서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가 상태가 된 생후 33개월 아이는 119 구급대에 의해 보은한양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 병원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CPR)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아이의 맥박이 뛰자 병원 측은 전원을 시도했다. 상급종합병원들이 "심정지 환자는 받아도 소생하기 힘들다" "병실이 없다"고 거부했고 아이는 숨졌다.   보은한양병원은 112개 병상을 보유한 보은군 유일의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종합병원은 아니지만 지역의료의 최전선에 있다. 의사 10명, 간호사 22명 등 100명의 직원이 보은군민 3만여명을 책임진다. 하루 외래환자 200~250명을 본다. 정부(지자체 포함)의 응급실·소아청소년과 지원금으로 5억원을 받는다. 이 병원 김형성 총괄본부장은 "병원 문을 연지 10년 동안 흑자를 낸 적이 없다. 대출금 돌려막기로 꾸려간다"고 말한다.     ━  "CT·MRI 정부가 지원을"    가장 큰 애로는 의사·간호사 구인난이다. 의사는 보통 연 6억~7억원을 지급해야 구할 수 있다. 이 본부장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CPR 해서 큰 병원으로 보낸다"며 "정부가 CT·MRI 같은 장비와 의사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지역의료 지킴이라는 소명감으로 버틴다. 우리가 없으면 응급 대응도 안 되고, 보은군 주민이 1시간 걸려 대전·청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홍종란 보은군 보건소장은 "보은한양병원이 이번에 최선을 다했더라. 우리 군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문을 닫으면 주민이 애를 먹게 된다"며 "시골 의료기관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  「 지역병원 최대 애로 의사 구인난 "정원 결정권 지자체에 달라" 의대증원 앞장 김영환 지사 호소 일본 지역의사제 시·도가 주도 」  김영환 충북지사  아이 사망 사고가 지역의료의 민낯을 드러냈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1일 숨진 아이의 유족을 찾아 위로했다. 김 지사는 1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충북대 의대, 건국대 의대 분교 정원을 89명에서 300명으로 늘리는 게 충북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치과의사인 김 지사는 17개 광역단체장 중에서 지역의료 혁신에 가장 열성적이다. 그는 "충북의 의대 정원 300명은 도민 생명을 위해 꼭 필요한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25일 충북대 의대 교수와 간담회를 열어 이들을 설득했다. 또 카데바(해부용 시신) 부족 걱정이 나오자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역의료에 관심이 높은 이유는. "지역 주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응급 상황에서 목숨을 구하고 건강에 이상 있을 때 제대로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 충북이 열악한가. "예방 가능 사망률, 신생아 사망률이 광역지자체 중 1위이다. 보은군의 아이도 1~2시간 이내 (추가로) 응급처치를 잘 했으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대 증원이 필요한 이유는. "(사망한) 아이 할머니가 '누구를 위한 파업이냐. 환자를 살리고 봐야 하지 않으냐'고 절규하더라. 주민을 위해 의사를 더 확보해야 한다. 의사 집단에 욕 먹어도 할말은 한다."    ━  김영환 지사, 실습용 시신 기증 약속    교육이 불가능하다는데.  "기초의학은 의사가 아니어도 관련 학자가 가르칠 수 있다. 해부용 시신도 기증을 늘리는 등의 해결법이 얼마든지 있다. 건물 건축 지원 등 정원 확대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도민 건강에 직결되는데, 예산을 (거기에 안쓰고) 어디에 쓰겠느냐. 경상국립대처럼 (의무 근무 조건부) 지역의사제를 도입해 장학금을 지급할 용의가 있다."    김 지사는 "우리도 미국처럼 의대 정원 결정권을 지자체 단체장에게 주면 좋겠다"며 "의사가 늘면 충북의 바이오헬스·신약개발 등에 대거 뛰어들게 유도해 연구비를 지원하고, 창업하면 세금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   일본 지역의사 9년 벽지 근무    일본은 지자체가 의료 정책을 주도한다. 기자가 지난해 12월 일본 후생노동성을 방문했을 때 '의사등 의료종사자 근무방식 개혁추진실' 사사키 코우스케 실장은 지자체의 역할을 설명했다. 2018년 법을 개정해 의사 인원 책정, 임상연수병원(우리의 수련병원) 지정, 연수의사 정원 결정권을 광역시도로 이양했다. 광역시도는 의사 편중 현황을 파악해 확보 목표를 정한다. 지역의사회·의대·의료기관 등과 지역의료대책협의회를 구성해 여기에서 세부사항을 정한다. 지역 대학과 연계해 지역의사제(의무 근무제)·지역인재전형 증원 규모를 정한다. 도쿄도의 경우 3개 의대에 25명의 지역의사를 선발한다. 졸업 후 9년 벽지에 근무하며 산부인과·소아과·응급의학과 등 네 개 전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국에서 지역의사제로 양성한 의사의 88%(그 지역 출신은 93%)가 9년 의무 근무 후에도 지역에 남는다.  일본은 전국을 335개 진료권으로 쪼개 의사 수요, 인구 변화, 환자 유출입, 지리 여건, 의사의 성·연령 분포 등 5개 요소를 종합해 의사편재(편중) 지표를 만든다. 지역협의회가 상위 진료권(의사가 많은 곳) 의사를 하위 지역으로 파견하는 것도 결정한다. 일본은 지역의사제와 별도로 한해 정원 107명가량의 자치의과대학을 운영해 지역의사를 양성한다. 전국 47개 광역시도에서 2~3명을 선발해 이 대학에 교육을 위탁한다. 비용은 지자체가 댄다. 도쿄도는 매년 여름방학마다 자치의대생을 모아 연수시킨다. 도교도청 보건의료국 코바야시 요스케 과장은 "연수에서 산간 벽지 의료 중요성을 인식시킨다. 졸업 후 현지 적응을 촉진하고 업무 능력 향상 기법을 교육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4.04.03 00:50

  • "서울대병원,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되살려야 할 공적 DNA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자넌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이 주말을 맞아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뉴스1 서울대병원은 누가 뭐래도 국내 최고이다. 규모 면에서 서울아산·삼성서울병원 등에 뒤처지지만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이라는 위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코로나19 같은 국란이 오면 의료진과 병상을 먼저 내놨다. 2015년 메르스 때는 최중증 환자 치료를 도맡았다. 국민은 이런 서울의대 부속병원을 존중했다.        ■  「 '국가중앙병원' 서울대의 허상 하루 1만명 외래진료 공룡돼 공적DNA 투철한 장점 살려 "의대혼란 중재자 역할 기대" 」  그런데 이번 의대 증원 혼란에서 서울대병원의 불편한 모습이 드러났다. 서울대병원은 2019년 "국가중앙병원이자 4차 병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상급종합병원 위의 병원이 되어 한국 의료를 이끌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어 중증환자 중심병원의 그림을 제시했다. 2022년 서울대병원의 전문환자(중증환자)가 전체 입원환자의 63%에 달한다.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선두권에 올라 있다. 하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중증이 아닌 일반환자나 단순환자가 37%나 된다는 뜻이다.     ━   중증진료 강화 시범사업 불참    서울대병원의 하루 평균 외래환자는 약 1만명이다. 서울아산·신촌세브란스 등보다 적긴 하지만 1만명은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도쿄대 의대 부속병원은 3500명이다. 서울대병원은 2019년 앞마당 지하에 외래 진료 전용구역을 마련했다. 게다가 중증 중심을 표방했으면서도 올해 시작된 정부의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에 서류를 덜 내 참여하지 못했다. 외래 진료는 줄이고 중증 진료를 강화하는 사업이다. 삼성서울·인하대·울산대병원이 참여한다.     서울대병원의 어린이병원은 한 해 150억~18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희귀·난치병과 중증 환자를 담당한다. 완화의료·재난의료 등에도 앞서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어린이병원을 운영한다는 것 외는 국가중앙병원의 설계도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   수도권 자병원 문어발 확장    서울대병원은 민간 대형병원처럼 '문어발 자(子) 병원 확장'을 추진한다. 경기도 시흥시에 시흥배곧서울대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5883억원이 들어가는 800병상 규모의 병원이다. 올해 착공해 2027년 개원이 목표다. 진료·연구 융합형 종합병원이라고 하지만,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또 하나의 대형병원을 짓는다는 강한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인근 인천 송도에 연세대가 세브란스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어서 국내 1,2위 의과대학을 둔 병원이 경쟁을 벌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대병원의 전공의는 738명이다. 전체 의사의 46%이다. 2010년 51.2%, 2020년 47%에서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정상이 아니다. 전공의의 장시간 노동(주당 77.7시간)과 저임금(근무시간 대비)의 '착취 경영 구조'에 가장 깊게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분당·보라매병원, 강남센터를 제외하면 전공의 비율이 35.8%라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절대 낮지 않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집단사직 결의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는 이번 의료 사태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이달 11일 울산대 의대에 이어 두 번째로 사직을 결의했고, 25일 일괄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지난 12일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방재승 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기자회견에서 "의대 증원 정책을 1년 유예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외국과 국내 기관에 의사 인력 추계를 의뢰하자"고 제안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1년 유예하면 유야무야 될 것인데, 국민이 왜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나. OECD의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더라"고 지적했다.     다만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에는 민간 병원과 달리 '공적 DNA'가 있다. 서울대병원은 특수법인이긴 하지만 사실상 국립대병원이다. '공무원 마음가짐'이 강하다. 한 해 수십 차례 의료 정책 관련 세미나를 연다. 해외 전문가에다 보건복지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와 머리를 맞댄다. 이번에 공적 DNA를 살릴 좋은 기회이다. 정부가 국립대병원 교수 1000명을 늘려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고, 상급종합병원을 중증 진료 위주로 재편하려고 한다. 남 국장은 "서울대병원은 민간도 공공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국가중앙병원으로 가려면 '중증 환자 비율을 높여 중증 중심으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전국 국립대병원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리하면서 정부의 뒷받침을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  최고 지식인 답게 중재 나서야     서울의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가 가장 늦게 (진료실을) 뛰쳐나가고, 가장 일찍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움직인 점은 아쉽다"고 말한다. 다른 교수는 "서울대 의대는 국내 최고 지식인 집단이다. 그에 걸맞게 움직여야 다른 의대 교수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방재승 위원장은 18일 이번 사태 발발 한 달여 만에 "국민 없이 의사도 없다는 사실을 잊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공의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게 한 점도 사과했다. 방 위원장은 "책임이 있는 현 사태의 당사자임에도 치열한 반성 없이 중재자 역할을 하려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서울대 의대 비대위가 이제는 진정한 중재자가 된 것 같다. 그 역할을 존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4.03.20 00:30

  • 원가도 못 받는 외과수술…전문의 못 뽑으니 전공의에 매달린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약 9000명의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해 복귀하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진료 이탈이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의 어떠한 압박도 겁내지 않는다. 수술이 무기 연기된 암·심장병 등 중증환자의 불안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 때는 참의료진료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은 지켰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다 빠져나갔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4일 공개한 '세계 톱 250위 병원'에 서울아산·삼성서울 등 17개가 뽑혔다. 일본(15개)보다 많다. 한국의 대형병원이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지만, 전공의 파업에는 맥을 못 추고 있다.     ━  전공의 줄여도 미·일의 4배    2000년 전공의 파업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전공의가 많은 서울대·세브란스 등 8개 대형병원의 2010~2023년 의사 구성을 분석해보니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이 2010년 51.3%에서 40.8%로 줄었다. 전문의는 약간 늘고 전공의는 줄었기 때문이다. 2010년 전문의가 3359명에서 2023년 4858명으로 늘었다. 병원당 한 해에 14.4명 느는 데 그쳤다. 전공의는 정부의 축소 정책에 따라 8.2% 줄었다. 주요 병원 중 전공의 비율이 가장 높은 데는 경북대병원으로 54.03%(2023년)에 달한다. 2010년(55.3%)과 유사하다. 전공의가 가장 많은 데는 서울대병원(738명)이다. 전공의 비율은 13년 새 51.2%에서 46%로 약간 줄었다. 국내 최고 병원이라지만 전공의 저임금에 의존하는 전근대적 구조를 깨지 못한다.  관련기사 의료대란 이유 있었네…전공의, 도쿄대는 10% 서울대는 46%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  「 8대병원 13년 의사구성 분석 병원당 전문의 연 14명만 증가 후진적 구조 바꿀 마지막 기회 "원가 100% 묻지마 보전해야" 」   2023년 8개병원의 전공의 비율이 40.8%로 줄었다 해도 뉴스위크 평가 세계 1위 병원인 미국 메이요클리닉(로체스터 본원, 10.9%), 도쿄대 의학부 부속병원(10.2%)보다 월등히 높다. 뉴스위크 평가 2위인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의사(의과학자 포함)가 5658명인데, 지난해 뽑은 레지던트가 217명에 불과하다. 이런 데는 전문의 중심으로 움직인다. 전공의는 피교육생 신분일 뿐이다. 차준홍 기자    ━  이상한 수가제도 20년 방치    건강보험 한 해 지출은 2010년 35조원에서 2023년 93조원으로 급증했다. 돈을 적지 않게 쓰는데도 전문의가 늘지 않는 이유는 수가 구조 왜곡 때문이다. 강중구 심평원장은 1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외과 수술 수가를 올렸는데도 원가의 81.5%이다. 최소한 원가를 보전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반면 혈액검사 등의 검체 검사 원가 보전율은 135.7%, 영상검사는 117.3%에 달한다.   김영옥 기자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수술이나 시술 같은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가 원가에 미달해 수술하면 할수록 손해난다.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런 분야 의사를 더 뽑으려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을 예로 들며 의대 증원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2022년 7월 그 병원 간호사가 쓰러졌으나 뇌수술 전문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숨졌다. 서울아산병원은 뉴스위크 평가에서 세계 22위(국내 1위)를 기록했다.    그동안 정부는 뭘 했을까. 2001년 시행한 상대가치 수가에 함정이 있다. 약 6000개의 의료행위별로 업무량·위험도 등을 고려하여 수가를 매긴다. 상대적 가치를 따지기 때문에 하나를 올리려면 다른 걸 내려야 한다. 그러나 의료계에서 합의가 안 된다. 내려야 할 데가 동의하지 않는다. 정부가 조정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미국의 선진제도를 들여왔지만, 우리 몸에 맞지 않은데도 20여년 손보지 않았고, 필수의료는 망가졌다. 병원들은 하루 수천 명에서 2만명까지 외래환자를 진료해 수익을 올렸고 거기에 필요한 만큼의 전문의만 늘려왔다. 역대 정부는 건보 보장성 강화에만 매달렸고, 현 정부 들어서 필수의료 강화를 시작했다.     ━  건보흑자 28조 필수의료에 쏟아야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국립대병원 교수 1000명 증원도 그 일환이다. 전문의가 늘면 전공의가 지금 만큼 필요하지 않게 되고 충실히 교육받게 된다. 신 박사는 "전공의 업무의 60%가 근로, 40%가 교육인데, 앞으로 2대 8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지 않은 정부와 병원은 책임이 없나”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정부가 전공의에게 그냥 돌아오라고 할 게 아니라 '그동안 뭐가 잘못됐고, 이런 부분이 부족하니 돌아오면 이렇게 잘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가려면 원가(현재 91%)를 보전하는 게 급선무다. 지금은 정부가 지정한 심뇌혈관센터조차도 전문의가 모자라 이틀마다 24시간 당직을 선다고 한다. 전화로 대기하다 새벽에 병원에 나가면 겨우 5만원 나온다. 아무 일 없으면 이마저 없다. 미국은 신경외과 등 몸에 칼을 대는 외과의사의 연봉이 내과 의사의 2~3배이다. 우리도 그리 가야 한다. 그러면 전공의가 자연스레 몰리게 된다. 지난해 건보 누적흑자가 28조원으로 늘었다. 이걸 아낄 때가 아니다. 신 박사는 "지금은 응급상황이다. '묻지마 보전' 식으로 필수의료 수가를 원가의 100%로 먼저 올리고 차차 다듬자. 그러면 전문의 채용이 늘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사태가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갈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전공의 파업에도 끄떡없게. 아니 전공의가 파업할 일이 사라질 수도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4.03.06 00:30

  • 의료대란 이유 있었네…전공의, 도쿄대는 10% 서울대는 46%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이날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진료 불가 안내문이 붙었다. 연합뉴스 전공의 파업이 또 시작됐다. 3년 반만이다. 전공의가 근무하는 데는 전국 221개의 대형병원이다. 이런 데 진료가 마비되니 나라가 흔들린다. 전공의는 인턴 3137명, 레지던트 9637명으로 1만2774명이다. 전체 의사의 11.4%이다(2022년 기준). 지난해 말 기준 서울대병원 전공의는 740명으로 전체 의사의 46.2%를 차지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40.2%, 삼성서울병원은 38%,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 33.8%이다. 오래된 병원일수록 전공의 티오(정원)가 많다. 빅5가 아닌 고려대(안암·구로·안산) 병원도 35%이다.     ━  근로자·피교육생이되 근로 중심     전공의는 의사 파업의 태풍의 눈이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때 6개월 넘게, 2020년 의대정원 확대 반대 때 18일 파업했다. 이들은  진찰·검사·수술·처치·당직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특히 마취·수술에서 빠지면 즉각 마비된다. 전문의를 보조한다지만 의료행위 총량 면에서는 전공의 몫이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한 외과 교수는 "전공의 없이 교수·펠로(전임의)가 일주일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2년가량 세부 분야를 익히는 전문의를 말한다. 과거 파업을 주도한 한 전문의는 "종전에는 전공의가 몰래 복귀해 진료를 도왔지만, 지금의 전공의는 그럴 것 같지 않다"고 우려한다.     ■  「 전공의에 의존하는 후진적 의료 진료 거부하면 의료대란 불가피 장시간 노동 착취구조 굳어져 "전문의 중심 전환 결단할 때" 」   전공의는 근로자이면서 피교육생(수련의)이라는 이중의 신분 보유자이다. 선진국 전공의는 피교육생 신분이 더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근로자 역할을 더 많이 한다.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 병원들은 '근로자 전공의'의 헌신적 노동에 의존해 왔다"며 "과거에는 주 120시간도 일했지만, 요즘은 80시간(법정 상한 기준)으로 줄었다고 해도 과하다"고 말한다. 전공의의 주당 근로시간은 77.7시간이다(전공의협의회 자료). 선진국 중에서 이런 데를 찾기 힘들다. 일본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요인 중의 하나로 의사의 노동기간 단축을 든다.    일본 도쿄대 의학부 부속병원의 가이드북(2023~2024)에 따르면 의사는 1774명(비상근 포함), 레지던트는 201명이다. 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전공의 비율이 10.2%이다. 지역으로 갈수록 이 비율이 낮아진다. 미국 메이요클리닉(로체스터 본원)도 레지던트 비율이 10.9%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   주 77.7시간 근로 연봉 6395만원    고려대 산학협력단의 '전공의 수련교육 공공성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공의는 평균 6395만원을 받는다. 신영석 교수(연구책임자)는 지난해 말 32개병원의 회계자료를 분석하고 전공의 2509명을 설문조사 했다. 분석 결과, 간접경비(지도전문의 인건비, 학술비, 의료사고 비용 등)를 포함하면 전공의 한 명에 연간 9993만원이 들어간다. 이 비용의 거의 전부를 병원이 부담한다. 전공의 진료 수가 등으로 일부 지원하지만, 극히 미미하다. 그래서 전공의들은 "최장시간 근로를 고려하면 최저시급을 받는다"며 "정부가 우리에게 해주는 게 뭐가 있느냐"고 반발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진료 중단이 옳다는 건 결코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일본·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은 전공의 수련 비용을 건강보험·예산·기금으로 직접 지원한다. 병원이 거의 부담하지 않는다. 미래에 국민 건강을 책임질 전문가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메디케어(노인건강보험)에서 전공의 1인당 2억 1411만원, 영국은 예산으로 5060만원 지원한다. 영국은 "환자에게 최고의 의료를 지원하는 의료인의 숙련된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모토에 따라 지원한다. 일본은 초기 2년은 중앙정부가, 후기 2년은 지방정부가 지원한다. 한국은 축적한 자본이 없어 '전공의 착취 구조'가 굳어졌고, 병원이 떠안았다. 물론 병원이 구조 고착화에 한몫 했다. 미국은 법으로 전공의 교육비 지원을 못 박고 있다.     ━  교육비 7225억 지원 필요     신영석 교수는 "전공의 인건비의 60%는 근로 대가, 40%는 교육비로 볼 수 있다. 근로 대가는 병원이 계속 부담하더라도 교육비와 간접비용은 정부가 지원하는 걸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게 연간 7225억원이다. 내년에 응급·흉부외과·신경외과·외상 및 화상·마취통증과 전공의에게 1인당 3000만원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원 과목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다만 신 교수는 "한국 의사가 고소득을 올리기 때문에 왜 지원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공의 의존 구조를 탈피하려면 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전공의 근로시간을 확 줄여야 '번 아웃(탈진)'을 막을 수 있다. 정부는 최근 필수의료 패키지 대책에서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기 위한 일부 대책을 담았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일부 병원의 사례를 보면 전문의 중심 병원이 불가능하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용인 세브란스병원은 신설이라는 이유로 2022년 전공의 티오를 받았다. 자체 전공의는 13명이고, 14명은 신촌세브란스에서 파견 나왔다. 전공의 비율이 11.2%이다.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적어 진료 중단의 영향이 미미하다. 아직은 적자이지만 점차 수지균형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설 대학병원은 전공의가 13명(파견 9명)에 불과한데도 지난해 의료 부문 흑자를 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4.02.21 00:42

  • "실손 있죠?" 병원·환자 도수치료 1조 야합…건보까지 휘청인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도수치료 장면. [중앙포토] 한국 의료의 아킬레스건은 비급여 진료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非) 보험'의 일본식 표기가 비급여인데, 자주 쓰이다 보니 이제 낯설지 않다. 비급여는 마르지 않는 샘 같다. 끊임없이 새로 생긴다. 비급여는 두더지 잡기 같다. 여길 치면 저기서 나온다. 한국은 돈이 없어 의료보험 도입에 엄두를 못 내다 1989년에서야 전 국민 의료보험을 완성했다. 쌓은 돈이 없어 얕고 좁게 보장했다. '저부담-저수가-저급여'였다. 이게 오래 갔다. 2000년대 들어 '얕고 넓게'로 바뀌었지만 얕은 보장성은 난공불락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에, 문재인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에 매달렸다. 일부 성과를 거뒀다. 암·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이 2013년 총진료비의 77.5%에서 2021년 84%로 소폭 올랐다.     ━  비급여 탓에 건보보장 제자리     그러나 전체 보장률은 2013년 62%, 2021년 64.5%로 제자리걸음 했다. 건보 지출이 41조원에서 78조원으로 급증했는데도 그랬다. 2021년 진료비의 35.5%는 환자가 부담했다. 19.9%는 법정 본인부담금, 15.6%는 비급여 진료비이다. 건보가 되는 외래 진료비의 30~60%를 환자가 내는데, 이게 법정 본인부담금이다. 나라마다 거의 다 있다. 골칫덩이가 비급여이다. 다만 과거에 수가가 그리 높지 않아 비급여가 의료기관의 적자를 보전하는 순기능을 했다. 정부도 이를 용인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완재에서 주재료가 됐다. 실손보험이 불을 붙였다.    ■  「 비급여 급팽창 17조원 실태 급여할 자본 없어 용인해 와 실손보험 가세 통제불능 상태 "혼합진료 부분 금지 바람직" 」     "실비 있으세요?"   병원에 가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실비(실손보험) 가입자이면 비급여 진료가 따라간다. 실손 가입자는 2010년 2080만명에서 2022년 3997만명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4일 제2차 건보종합계획에서 "환자의 지불 능력 상승과 의료기관의 수익 추구가 맞물려 비급여 진료가 팽창했고, 건보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손보험이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커버하면서 환자의 비용 의식이 약해졌다. 지난 정부 '문 케어'의 급격한 보장성 확대도 문턱을 낮췄다.   신재민 기자  ━  하이푸시술 가격 83배 차이     정부 잘못도 크다. 복지부는 비급여를 '필요악'으로 보고 손대지 않았다. 실손보험·비급여의 '쌍끌이 쓰나미'를 보면서도 복지부(건보 담당)와 금융위원회(실손보험 담당)는 머리를 맞대지 않았다. 민간보험회사도 '의료비 100% 보장' 상품으로 경쟁할 정도로 수익 추구에 매달렸다. 백내장 다초점렌즈 가격이 최소 30만원, 최대 900만원으로 30배 차이 난다. 도수치료는 최소 10만원, 최대 60만원이다. 하이푸시술은 30만원, 2500만원이다.     쌍끌이의 예를 보자. 실손보험 가입자가 정형외과 의원에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같이 받는 경우가 많다. 진찰료(재진) 1만1000원, 간섭파 전류치료(ICT) 등의 물리치료 8000원, 도수치료 10만원이 나온다. 환자는 진찰료와 물리치료의 법정 본인부담금(30%) 6000원, 도수치료 10만원을 낸다. 이 둘을 실손보험이 커버한다. 도수치료가 목적인데 건보 재정(1만3000원)까지 축난다. 2021년 비급여 진료비는 17조 3000억원이다. 2010년 8조1000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대부분 실손보험이 커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손 지출 '톱 10'만 따지면 3조원(2021년)이다. 도수치료만 1조원(2022년)이 넘는다(보험연구원 자료).     정부가 인제야 혼합진료를 금지한단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이 첫 대상이다. 내년 중 시행한다. 건강보험공단 실태조사에 응한 1800여개 의료기관의 도수치료의 89.4%가 급여·비급여 혼합진료를 했다. 백내장 수술·비밸브재건술·하이푸시술은 100%이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일본과 우리의 의료제도가 거의 같은데, 일본은 혼합진료를 전면 금지하고 일부만 허용한다. 우리도 금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백내장 시술료가 107만원이고, 렌즈값(비급여)이 500만원이란 게 난센스"라고 말했다.    ━  일본은 비급여 초과이득 없어     하지만 실효성은 "글쎄"이다. 크고 작은 수술, 각종 검사, 치료 재료, 심지어 약까지 비급여가 없는 게 없다. 원래 급여해야 하나 돈이 부족해서, 안전하고 효과는 있으나 너무 비싸서 비급여를 허용한 것들이다. 전자는 MRI 촬영 횟수 제한, 후자는 로봇수술이 대표적이다. 이런 부류의 혼합진료를 금지했다가는 의료 현장이 올스톱 된다. 그래서 정부가 도수치료·백내장 수술 같은 '비(非) 중증 과잉 비급여'를 우선 목표로 잡았다. 여기서 확대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     올해부터 모든 의료기관이 비급여 가격뿐 아니라 진료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면 처음으로 비급여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비급여 명칭을 표준화하고 권장가격을 제시할 방침이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일본은 비급여에서 초과 이득을 얻지 못한다. 의료기관이 원가를 제출하면 정부가 비급여 수가를 정해준다. 우리는 가격을 맘대로 책정해 병원마다 다르다"고 지적한다. 다만 일본의 건보 보장률이 84%로 높아 한국과 차이 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도 "정부가 비급여를 방치해 병원이 과도하게 초과 이윤을 취하고, 대학병원 의사가 개업하고, 의료시스템이 붕괴한다"며 "외국처럼 비급여 가격을 통제해 병원 간 차이가 최대 2배 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4.02.07 00:34

  • 유언장 없이 8억 남기자 '모자 대 딸들' 골육상쟁 끝에 남남 됐다[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원혜영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서소문 유원빌딩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원 전 원내대표는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정계를 은퇴하고 웰다잉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가 유언장 작성 운동을 시작했다. 이달 1일 소순무·이양원·양소영 등 변호사 16명이 유언무료상담센터(Welldyingplus.org)를 열었다.    원 대표는 "재산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면 싸움이 벌어져 가정이 파괴된다"며 "특히 1인 가구가 늘면서 그냥 떠나면 원하지 않는 데로 재산이 가게 된다"고 말한다. 17일 원 대표를 만났다.     ━  집 한 칸인데 뭘? 이건 잘못된 생각    유언장이 그리 중요한가.   "최근에 LG그룹 일가에서 상속 관련 분쟁이 발생했는데, 알고 보니 (故) 구본무 전 회장이 유언장을 안썼더라. 유언장의 법적 효력을 고려하면 (그게 있었으면) 해석의 여지가 사라져 다툼의 여지가 없었을 텐데….  미국인의 56%는 유언장을 쓴다. 한국인은 1%도 안 된다. 지난해 10월 법정에서 LG 관계자는 "(LG그룹은 상속 때) 유언장을 쓰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재산이 얼마 안 돼도 써야 하나. 일반인은 '재벌이나 쓰는 거지 뭐, 집 한 칸 있는데 쓰고 말고 할 게 뭐 있나'라고 말한다. 잘못된 생각이고 무책임하다. 재벌이 안 썼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지 않으냐.     ■  「 유언장 상담센터 연 원혜영 대표 미국 56% 작성, 한국은 고작 1% 1인 가구일수록 미리 준비해야 "디지털 유언장,공공보관 도입을"  」   유언무료상담센터 간사 역할을 하는 이양원 부천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극단의 예를 살펴보자.     ━   #골육상쟁    2022년 초 박모씨가 갑자기 숨졌다. 유족은 아내와 1남 2녀. 아내 김모씨는 재산(약 8억원)을 아들 앞으로 이전하려고 두 딸에게 상속포기각서를 요구했다. 딸들이 응하지 않자 아들 박씨는 "재산을 어머니 앞으로 해뒀다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삼등분하자"고 제안했다. 누나들이 거절하자 박씨는 소송을 냈다. 모자(母子) 대 딸들의 전쟁이었다.    김씨는 "내가 남편의 재산 형성에 기여했고, 간병하고 치료비를 부담했다"며 '특별 부양과 특별기여'를 주장하면서 기여분을 인정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두 딸의 승리였다. 양 측은 법정에서 상대를 격렬하게 비난했고 남남이 됐다.     ━   #모범 사례    80세 홍모씨는 서울 강남구 35평형 아파트에 산다. 자녀는 2남 1녀. 이혼한 딸이 같이 살며 부모를 돌본다. 홍씨는 20년 전 장남이 결혼할 때 아파트를 사줬고, 차남의 미국 유학비용을 댔다. 딸은 특별히 해 준 게 없다. 홍씨는 딸에게 집을 상속하고 아내를 보살피길 원한다. 홍씨는 자필 유언장을 작성한다. "재산의 반은 아내에게, 나머지 반은 딸에게 상속한다. 아내와 딸은 아파트를 담보로 5000만원 대출받아 큰아들에게 주기 바란다. 유언 집행자로 딸을 지정한다."     ━   한 해 상속분쟁 5만1626건     이 변호사는 "과거 두 아들에게 간 아파트와 유학비용을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상속재산의 유류분을 초과하기 때문에 두 아들이 소송을 걸기 어렵다"며 "유언장이 갈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유언장을 쓰지 않으면 법대로 아내에게 9분의 3, 자녀 셋에게 9분의 2가 각각 돌아간다. 그러면 아파트를 팔아서 나누게 되고 홍씨의 아내는 살 집을 잃게 된다.    이 변호사는 유언이 상속 분쟁 예방 백신이라고 말한다. 유류분이란 사망자의 뜻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유족이 받을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말한다. 자녀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다. 가령 재산 8억원을 자녀 둘에게 물러줄 경우 자녀당 법정상속분은 4억원, 유류분은 이의 2분의 1인 2억원씩이다. 못 사는 자녀에게 더 남기더라도 다른 자녀에게 최소 2억원은 줘야 한다는 뜻이다.  차준홍 기자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원이다. 재산 가치가 오르면서 분쟁도 늘어난다. 상속분쟁은 2022년 5만1626건으로 전년보다 11% 증가했다. 자녀나 부모가 없는 1인 가구가 유언장 없이 숨지면 재산이 형제나 조카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되길 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영희 디자이너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 때 같이 해야     원 대표는 "유병장수(병 들어서 오래 사는 것) 시대에 유언장을 미리 쓰되 유산의 10%를 기부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고 말한다.      재산 보유자가 많은가.    공장 일 하면서 손가락 잘리고,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면서 집 한 칸을 가지게 됐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 40년대생이 그렇고, 이제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늙어간다. 약 1500만~2000만명이 재산을 보유한 채 사망하게 된다. 한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유언장 쓰기가 쉽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삶을 한 번 정리해본다는 의미에서 요건에 맞춰 써보자. 그냥 새해맞이 삼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분위기 조성이 중요할 것 같다.   전국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438개)에서 유언장의 필요성을 같이 설명하면 좋다. 장례 절차 결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은 따로따로 논다.    유언장에 좀 더 쉽게 접근할 방법이 없나.  일본이 디지털 유언장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법무국(지국 또는 출장소) 312곳에서 자필증서 유언장을 보관한다. 유언서보관관이라는 공무원이 있다. 보관료는 4만원이 채 안 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4.01.24 00:18

  • 재산건보료 내린다는데, 서울 10억 집 혜택은 1만원뿐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 종로지사. 연합뉴스 은퇴자나 자영업자에게 건강보험료만큼 부담스러운 게 없다. 특히 은퇴 후 건보료가 직장 다닐 때보다 많으면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는 지인의 사업체의 '가짜 직장인'이 돼 재산 건보료를 회피한다. 2022년 9월 새로운 고통이 생겼다. 국민연금·금융소득 등이 2000만원(종전 3400만원) 넘으면 건보 피부양자에서 탈락한다. 국민연금만 월 167만원 받아도 탈락이다. 이때부터 지역가입자가 되고, 재산·차에 월 10만~20만원의 건보료를 내야한다.     ━  윤 대통령 대선 때부터 관심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은퇴한 어르신은 소득이 줄었는데도 건보료가 오히려 늘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재산과 자동차에 부과된 과도한 보험료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며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집값 폭등으로 인한 재산 건보료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의힘이 지난 5일 '330만 세대 월평균 2만4000원 인하' 대책을 내놨다. 2월 보험료부터 반영한다. 재산 건보료는 재산세 과세표준에서 기본공제 후 부과한다. 이 공제가 지금은 5000만원이고, 내달 1억원으로 두 배로 확대한다. 과세표준은 공시가격(시세의 69%)의 43~45%(1세대 1주택 기준)이다. 쉽게 말해 시세의 약 30%(1주택자)가 과세표준이다. 내달 차 건보료는 아예 폐지한다. 현재 4000만원 이상 차량 소유자 9만6000세대가 내고 있다.      ■  「 부과체계 개편 효과 따져보니 3.3억이하 재산에 안 내게 돼 부산·대전 시세 낮아 혜택 커 "2년마다 공제액 1억 올려야"  」  이번 조치의 효과가 작지 않다. 지금은 시세 1억7000만 이하는 재산 건보료가 없다. 내달에는 이 기준선이 3억3000만원으로 올라간다. 두 구간 사이 108만 세대의 재산 건보료가 없어진다. 3억3000만원 주택의 재산 건보료가 월 5만5850원(연 67만원)이다. 재산분 최대 건보료이다. 차 건보료 최대치는 4만5220원이다. 재산·차 건보료를 다 내는 가입자가 약 7만 세대인데, 둘 다 없어지면 최대 10만원가량 줄어든다. 지난해 재산 건보료 총액은 약 4조원, 차는 334억원이다. 이번 조치로 9831억원이 줄어든다.     ━  재산·차 최대 10만원 경감      재산 건보료는 시세가 3억3000만원 넘으면 앞으로도 계속 낸다. 222만 세대가 해당한다. 다만 이번 조치 덕분에 월평균 2만4000원 줄어든다. 이번 조치의 혜택이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경감액이 작다. 지난해 11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약 10억원이다(한국부동산원). 법령에 따라 과세표준을 산정하고 5000만원을 공제하면 2억6050원이고 여기에 13만7340원의 재산 건보료가 나온다. 이번 조치에 따라 내달 재산 공제를 1억원으로 늘려 2억1050만원에 매기면 12만7330원으로 줄어든다. 감소액은 1만원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자동차는 30년 전에는 사치품이었지만 지금은 필수품이다. 차 건보료를 잘 없앴다"고 평가한다. 김 교수는 "재산 건보료 축소의 방향은 바르다고 본다"면서 "다만 이번 공제 확대로 건보료가 조금 내려갈 뿐이다.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면 집 한 채 때문에 건보료가 20만원 나오는데(4년 간 경감됨), 이번 조치로 별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재민 기자    재산 건보료는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이 30%가 채 안 되던 시절인 1982년에 보조장치로 도입됐다. 하지만 지금은 1000원짜리 음료수를 살 때도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세상이다. 김진현 교수는 "소득파악률이 80%가 넘는다. 일부 비공식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소득 파악이 잘 돼 있다"고 말한다. 직장인과 달리 지역가입자에게만 재산에 건보료를 매기는 게 '공정 코드'에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재산 건보료는 일본과 한국뿐인데, 일본도 크게 낮추고 있다. 이번에 공제를 5000만원 늘린다지만 20억원 넘는 부동산은 혜택을 못 볼 가능성이 크다. 재산 건보료는 60개 등급으로 쪼개 부과하는데, 33등급 이상(시세 20억원 이상)은 이번 조치를 적용해도 등급 변화가 없어 부담이 달라지지 않을 수 있어서다.     ━  피부양자 탈락 충격 더 낮춰야    다만 집값이 낮은 지역은 이번 조치를 반길 만하다. 예를 들어 부산의 아파트 평균가격은 3억2000만원, 대전은 3억3000만원이다(지난해 11월 기준). 재산 건보료 0원의 기준선을 밑돈다. 복지부에 따르면 부산의 4인 세대 A(56)씨는 3억2000만원의 아파트에 살고, 2023년식 그랜저(3470cc)를 갖고 있다. 월 건보료가 18만5410원이다. 다음 달에는 재산분 5만850원, 차 4만5220원이 사라져 9만원 넘게 부담이 줄어든다.    김진현 교수는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는 퇴직자(1주택)의 재산 건보료 요율표를 바꿔서라도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며 "재정 부족분은 정부 지원금 확대로 해결하자"고 말한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래 재산에서 건보료를 걷지 않았어야 한다. 이번 정부 조치는 정상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며 "건보 재정을 고려해 한꺼번에 없애기 어려우니 2년마다 공제액을 1억원 올리다가 5년 후에는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처럼 소득에만 매기자는 뜻이다. 지난해 말 기준 건보료 누적흑자 추정액은 25조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고령화로 인해 2028년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4.01.10 00:26

  • 말 통하는 中동포도 별따기…요양병원 간병인 절반이 외국인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 구로구 한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남수현 기자  "의료기관 내에서 간호와 간병을 분리하여 운영하는 외국 사례가 거의 없고, 간병은 간호서비스에 포함돼 제공된다. 간병서비스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돌봄 영역에서 제공된다."    건강보험공단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제언' 보고서에서 한국의 간병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도 "외국은 병원이 알아서 한다. 간호인력이 다한다. 대소변 받고 기저귀 갈고 밥 먹이는 이런 일을 다 한다"고 말한다. 우리처럼 가족이 병실에 상주하며 간병하거나 유급 간병인을 고용하는 일이 없다.      ■  「 간병부담 10조,정부 제도화 착수 요양병원 간병인 46%가 외국인 중국동포 구하기 점점 어려워져 "일본처럼 해외 양성 후 도입을"  」  한국에서 외국처럼 운영하는 데가 있긴 하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일반종합병원 등의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그것이다. 간호인력이 다한다. 다만 입원환자의 39%만 이런 혜택을 볼 뿐 나머지는 가족몫이다. 요양병원도 마찬가지다. 이런 간병 사각지대 탓에 한 해 10조원의 부담이 발생한다. 2008년 3조6000억원에서 10여년 새 약 3배로 늘었다.     ━   간병 부담 14년 새 약 3배로     요양병원에 한 해 47만명이 입원하고(환자당 평균 153일), 21%가 사망한다. 환자와 가장 오래 붙어있는 사람은 간병인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간병인이 6인실에서 공동 간병을 하고, 병실 한쪽 간이침대를 집 삼아 24시간 보낸다. 정부 조사 결과, 1296개 요양병원에서 3만 4929명이 근무한다. 병원당 27.5명이다. 외국인이 1만 6192명(46.4%)이고, 거의 다 중국동포 여성이다. 경력 1년 미만이 절반가량이지만 3년 넘은 베테랑도 18%나 된다. 정부가 또 400곳만 심층 분석했더니 외국인 간병인만 있는 데가 69곳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중국 허난성 출신의 중국동포 이연화(68·가명)씨는 2004년 한국에 와서 1~2년 식당일을 하다가 경기도 일대를 돌면서 간병인을 했다. 지금은 서울 구로의 한 요양병원에서 6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 식사 보조, 체위 변경, 기저귀 갈기 등 30여 가지의 일을 한다. 이씨는 "초기에는 중국 사람이라고 얼마나 무시하는지, 엄청 욕먹었다. 집(중국)에 가서 설을 쇤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씨는 "낙상 우려 때문에 침대가 낮아서 항상 허리를 굽혀야 해서 디스크 협착증이 왔다. 공동간병이 무척 힘들다"고 말한다. 하루 9만원 정도를 번다.      한국인이 간병일을 기피하면서 중국동포 아니면 요양병원을 유지하기 힘들게 된 지 오래다. 1997년 입국한 김옥화(66·헤이룽장성 출신)씨는 건설현장을 전전하다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간병인이 됐다. 김씨는 "최선을 다하는데도 보호자가 알아주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분명히 목욕을 시켰는데, 보호자가 나중에 딴소리할 때는 참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물론 간병의 질도 문제다. 간병인은 대부분 중개업체에서 공급한다. 정부가 43개 중개업체를 조사했더니 20%는 간병인 업무 매뉴얼이 없었다. 19%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 4대 사회보험을 제공하는 데가 14곳에 불과하다.     ━  간병인이 환자 가장 잘 알아     정부는 2024년 7월~2026년 12월 예산 240억원을 들여 요양병원 10곳에서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을 한다. 2027년 모든 요양병원으로 확대하며, 이 때는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다만 간병사라는 국가자격증을 도입하지 않고, 요양보호사를 활용한다. 현재 252만여명이 배출돼 있지만 60만명만 현장에서 나와 있는데 장롱 자격증을 이끌어내 활용하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 외국인 요양보호사를 늘리려 한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외국인(D-10 비자)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지금은 1만6856명의 외국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4795명이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이 중국인이지만 일본(1359명), 미국(978명), 캐나다(263명), 대만(115명), 베트남인(79명)도 있다. 거주비자나 재외동포 비자 소유자, 결혼이민자 등이 딴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동포 간병인도 줄어드는 추세다. 코로나19 때 고향 갔다가 안 오는 이가 늘었다. 60대가 63%, 70대 이상이 25.4%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서울의 한 요양병원 원장은 "간병인은 가치 있는 일을 한다. 24시간 환자 곁에 붙어서 누가 말을 못하는지, 의식이 없는지 등을 훤히 꿰뚫고 있다"며 "치매 노인이 불안증세를 보일 때 잘 아는 간병인이 옆에 가면 안정될 정도로 심리적 지지 역할을 한다. 요양병원의 최일선 일꾼"이라고 말한다. 그는 "중국동포 간병인의 2세가 이제는 한국으로 안 온다. 중국 간병인 아니면 현 시스템이 5년도 못 버틸 것"이라며 "개도국의 젊은 인력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  "AI 간병 투자 서둘러야"    손덕현 이손요양병원 이사장은 "요양보호사보다 한 단계 낮은 간병사 자격증을 도입해 중국동포를 흡수하고, 일본처럼 동남아시아에 간병사 교육기관을 만들어 현지에서 양성해 들여오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기평석 대한요양병원협회 명예회장(가은병원 원장)은 "중국동포도 나이 든 사람만 간병인을 한다. 점점 구하기 힘들어진다"며 "인공지능(AI)을 간병에 도입해 환자 움직임을 모니터하다가 필요한 경우 간병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 지원=남수현 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12.27 00:35

  • 미국은 엄두도 못 낸다…과다약물 극단선택자 살린 데이터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연세대·소방청·민간기업 등이 만든 'AI 앱뷸런스' 시스템이 장착된 구급차의 모습. AI가 구급대원과 환자의 대화, 생체정보 등을 인식해 최적의 응급센터를 찾아준다. 사진 연세대 AI앰뷸런스 사업단 지난 9월 새벽에 40대 환자 A씨가 119 구급대에 후송돼 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가족은 스무 알의 약을 삼킨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극단적 선택 시도자였다. 혈압이 최고 73, 최저 40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환자는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했다. 환자에게 상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급하게 오느라 가족은 약을 챙겨오지 않았고 이름도 몰랐다. 집에 가서 약 봉투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의료진은 "심장 쇼크 위험이 높다"고 가족에게 알렸다. 수액을 공급했지만, 혈압이 68/42로 더 떨어졌다. 혈압·맥박이 떨어져 심장이 느리게 뛰는 심장성 쇼크 직전까지 갔다. 혈압을 올리는 약(승압제)을 쓸지, 해독제를 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 진료정보 응급 상황 활용 확산 진료 3년,투약 1년치 정보 모아 AI가 응급실 추천,뺑뺑이 사라져 "활용도 높이고 부처장벽 없애야" 」  의료진은 가족 동의를 받고 '응급진료 지원 데이터 서비스'에 접속했다. 환자가 먹은 약을 확인했고, 승압제를 투여했다. 환자는 서서히 회복했고, 며칠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환자가 복용한 약은 다량으로 먹을 경우 혈압과 맥박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다른 상급종합병원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벤조다이아제핀 같은 향정신성 약을 다량으로 먹으면 해독제를 투여한다. 환자가 먹은 약을 빨리 찾아낸 덕분에 위험한 순간을 넘긴 것 같다"고 평가했다.    ━   5088만명 진료 정보 활용    이 환자를 살린 '응급진료 지원 데이터 서비스'는 한국 건강보험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한국은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를 갖췄고 이 덕분에 진료 정보가 한 곳으로 모인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은 민영보험 방식이어서 엄두를 못 낼 일이다. 응급 데이터 서비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운영한다. 그동안 진료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 빅데이터가 되면서 이런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심평원은 지난 6일 보건의료 빅데이터 미래포럼에서 성과와 대책을 공개했다.   한국인은 병원에 많이 간다. 지난해 진료받은 사람이 5088만명. 건수는 15억 4251만 1000건, 입원일수는 17억 403만일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태아를 시작으로 수없이 건강검진을 받는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예방접종도 적지 않다. 이걸 환자별로 통합하면 강력한 힘이 된다. 특히 응급상황에서는 큰 힘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게 응급 데이터 서비스이다. 심평원은 의료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전 국민의 진료 정보(3년 치)와 투약 이력(1년 치)을 개인별로 통합 조회할 수 있게 했다. 응급실 의료진이 응급 상황 때 검색할 수 있다. 환자나 가족 동의를 받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면 의료진 판단에 맡긴다. 김영희 디자이너    ━  5000명 응급환자 회생 도와      2021년 9월 이 서비스를 시작해 5000명의 응급 환자 회생을 도왔다. 한해 응급환자 760만명에 비해 미미하지만 A씨처럼 긴급한 상황에서 값어치를 한다. 여행 중 응급 상황에서는 쓰임새가 더 크다. 지난 10월 말 강원도로 여행 간 60대 남성 환자(경기도 거주)가 9시간 동안 극심한 안구 통증을 앓다가 응급실을 찾았다. 가족이 "한 달 전 눈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병명은 몰랐다. 환자는 통증이 너무 심해 대화가 불가능했다. 의료진이 보호자 동의를 받아서 응급 데이터 서비스에 접속해 9월 중순 황반변성 수술을 받을 사실을 확인했다. 환자는 여기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받아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개인별 정보 꾸러미를 마련해 놓고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이용자가 12개 응급센터와 169명의 의료진(다른 이는 접속 불가)에 불과하다. 이들은 심평원과 사전 협약을 해서 이용한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강릉아산·강원대·원주세브란스병원, 경남의 한마음병원, 전북 동군산병원 등이다. 확산이 더딘 이유는 응급 상황에서 데이터를 조회할 여유가 없고, 사전 협약 등의 절차가 복잡해서다. 캐나다는 응급 상황에서 과거 진료·투약 정보를 공유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   구급차 환자 중증도 AI가 판단   김영희 디자이너  응급실 이전 단계 의료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주관하고 과학기술부·소방청·중앙응급의료센터, 다수의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지능형 스마트 앰뷸런스' 사업이다. 구급차에 탑재된 AI가 구급대원과 환자의 대화, 환자 상태와 생체정보를 기록해 인근 응급센터와 공유한다. 또 AI가 중증도를 파악해 최적의 응급센터를 추천한다. 병원이 '수락' 버튼을 누르면 이송한다. 응급실 뺑뺑이가 없어지고, 환자 정보를 미리 알고 있으니 빨리 대처하니 골든타임 처치율이 올라간다. 이 서비스는 청주·원주·광주에서 시범 운용 중인데, 내년에는 다른 데로 확대할 예정이다.  119구급대원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김종호 기자  연세대 'AI 기반 응급의료시스템 개발사업단' 장혁재 단장(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은 "한국은 5G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소방·응급 분야 전산 관련 민간기업의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심평원의 응급 데이터 서비스와 AI 앰뷸런스를 결합하는 식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면 응급실 도착 전에 구급대원이 환자 질병 이력을 볼 수 있어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런 서비스를 원하는 국민의 사전 동의를 받아두면 된다"고 덧붙였다. 오수석 심평원 기획이사는 "국민 누구나 5년마다 응급 상황을 겪는다는 통계가 있다"며 "개인정보보호법 규정을 완화하고 관련 부처의 정보 교류를 확대해 응급환자의 생존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12.13 00:32

  • 월세 2만원, 청년은 고독사 생각한다…이렇게 10년 지낸 4만명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정부의 복지 확대 정책에 따라 기초수급자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청년 수급자도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쪽방촌. 연합뉴스 당근마켓에서 받은 밥 5개, 후원받은 쌀과 라면, 고장 난 선풍기, 기침약, 벽의 큰 구멍…. 한 청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유튜버(33)의 영상에 나오는 원룸 자취방(월세 2만원)의 풍경이다. 그는 2021년 말 기초수급자가 됐고, 집 없는 흙수저를 자처한다. 이 청년은 당근마켓 무료 나눔으로 각종 생필품을 구한다. 라면 수프가 맛있다고 여러 차례 나눠 먹기도 한다. 전자레인지를 인터넷에서 1만원에 샀고, 5000원에 산 선풍기는 고장이 나서 잘 켜지지 않는다. 창문에 청테이프로 뽁뽁이를 붙여서 겨울을 난다. 이 청년은 다른 영상에서 "생일 파티를 한 적이 없다"며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생일 무료 버거'를 받아서 맛있게 먹는다.    ■  「 청년 빈곤층 갈수록 심각해져 복지 확대하자 수급자 44% 증가 독립 못해 부모 따라 빈곤 진입 "가난 대물림 막게 고용 연계를" 」     ━  기초수급자 청년 유튜버 등장    이 유튜버같이 20, 30대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크게 늘었다. 복지 확대 정책으로 느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거나 헤어나지 못하는 청년이 느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4만여명은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된 지 10년이 넘어 탈(脫) 빈곤의 꿈이 멀어진다. 28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분석 자료와 보건복지부 자료를 종합해 보니 청년의 빈곤층 추락이 심상치 않다. 2030 수급자는 2018년 16만5452명에서 올 8월 23만8784명으로 44.3% 늘었다. 차상위계층은 33% 늘었다. 20대 기초수급자는 32.9%, 30대는 61.6% 늘었다. 물론 전체 증가율(47.2%)보다 약간 낮고, 80대(107%), 70대(53%)보다는 훨씬 낮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김영옥 기자  젊은 기초수급자 증가는 극심한 취업난, 비정규 근로 증가 등의 사회경제적 요인과 기초수급자 선정 기준 완화 같은 제도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2015년 기초생보 급여를 생계·의료·주거·교육으로 쪼갰다. 또 교육급여는 그때, 주거급여는 2018년에 부양의무자 기준(자녀나 부모의 부양 능력을 따지는 제도)을 없앴다. 생계급여는 2021년 10월 사실상 없앴다. 이와 함께 주거급여의 기준선을 2015년 기준중위소득의 43%에서 올해 47%로 올렸다. 내년에는 48%로 오르고 50%까지 올라간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고로 올렸고 생계급여 기준선을 크게 올렸다. 기초수급자도, 수급액도 크게 늘었다.    ━  '복지 확대-복지 안주' 걱정     이런 제도 변화로 인해 우선 50대 이상의 기초수급자가 급증했다. 지난 8월 60대 수급자는 2018년보다 87%나 증가했다. 70대(53%), 50대(35%) 증가했다. 정준섭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50~70대 수급자가 증가하면 20, 30대 자녀의 수급자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장성한 자녀라도 20, 30대가 부모와 같이 살면 같은 가구로 분류한다. 부모가 수급자가 되면 20, 30대도 자동으로 수급자가 된다. 20~34세 청년 세대 중 81.5%가 미혼이고, 절반 넘게 부모와 같이 산다(통계청). 게다가 미혼 20대는 부모와 떨어져 살아도 소득이 빈곤선(기준중위소득의 50%) 밑이면 부모와 한 가구인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태완 빈곤불평연구실장은 '빈곤의 대물림, 청년의 기초수급자 안주'를 걱정한다. 올 8월 기초수급자 243만여명 중 10년 넘게 수급자로 산 사람이 47만여명(19%)에 달한다. 2018년보다 21% 늘었다. 20대가 2만8183명, 30대가 1만533명이다. 수급기간 5~10년인 20, 30대가 3만2000여명에 달한다. 이렇게 오래 기초수급자를 유지한 20, 30대는 부모 따라 수급자가 된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빈곤의 대물림 미끄럼틀'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부모와 따로 사는 미혼의 30대도 기초수급자 문턱이 낮아졌다. 이런 청년은 부모와 같은 가구로 넣지 않는다. 별도 가구로 분류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4세 청년 중 1인 가구가 20%이다. 부모와 따로 산다는 뜻이다. 따로 사는 30대가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종전에는 본인의 소득·재산뿐 아니라 부모의 부양 능력을 따졌는데 이게 없어졌다. 기초수급자가 되기 쉬워졌다는 뜻이다. 이 때문인지 30대 주거급여 수급자가 5년여 만에 57% 증가했다. 33세 유튜버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덕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유튜브 영상에서 "(미래에)고독사했을 때 신원 확인이 안 되면 부모님 마음 졸일까 봐 신분증과 군번줄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한다.    ━  청년 취업·창업 지원 강화해야    이종성 의원은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취업 시장 적신호 등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2030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 가입 감소, 기초수급자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면서 "약자복지 강화 기조에 맞춰 기초생활 보상 수준을 강화하되 취업·창업 지원을 강화해 탈(脫) 수급을 촉진하고 근로 유인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완 실장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잡기 어렵고, 잡더라도 비정규직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잡으니 기초수급자가 되거나 거기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다"며 "고용과 복지를 연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빈곤제도는 빠르게 변하는데, 고용시장은 달라지지 않아 장기 기초수급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11.29 00:58

  • 김포가 서울 되면…기초연금 16만원 늘지만 누군가엔 박탈감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 탑골공원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포·구리 등을 서울시로 편입하려는 국민의힘의 뉴시티 프로젝트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주에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기도 소속 시나 군이 서울시가 되면 복지에도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기준이 일부 달라지면서 대상자가 늘고 수령액이 올라간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32만 3180원(최저 3만 2310원)이 나간다. 적어 보이지만 보험료를 32만원씩 10년 부어야 월 33만원의 국민연금이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적지 않다. 기초연금 지급 대상자 선정방식이 묘하다. '소득 하위 70%'라고 돼 있다. 소득·재산으로 줄을 세워 70%가 되는 지점의 소득·재산이 기준이 된다. 매년 올라간다.      ■  「 '뉴시티 프로젝트' 복지에 영향 재산평가 줄어 기초연금 신규 수급 기초수급자도 늘고 생계급여 올라 "소득 환산제 대신 컷오프 도입을" 」     ━  소득인정액 16만여원 줄어 유리    서울로 편입되면 재산(공시가격 기준)에 변화가 생긴다.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소득인정액(소득평가액+재산의 소득환산액)을 구한다. 이때 재산에서 일정액(기본재산액)을 공제한다. 대도시(서울·광역시·특례시)는 1억 3500만원을, 김포·구리 같은 중소도시는 8500만원을 빼준다. 두 그룹 간에 5000만원 차이가 난다. 서울의 부동산이 비싸고, 중소도시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서 이런 차이를 둔다. 5000만원을 월 소득으로 환산하면 16만 6670원이다. 서울로 편입되면 월 소득인정액(이하 소득)이 이만큼 줄어들게 돼 유리해진다.  신재민 기자  올해 기초연금 선정기준선(소득인정액)은 단독가구 202만원(부부 가구 323만 2000원)이다. 가상의 예를 보자. 김포시에 사는 독거노인 김씨의 소득이 203만원이면 탈락이다. 서울시민이 되면 소득이 186만 3330원(203만-16만 6670원)으로 줄어 수급 자격이 생긴다. 다만 32만여원을 다 못 받는다. 소득역전방지 장치 때문에 15만원가량 받게 된다. 부부 가구도 최대 16만원가량 받게 된다. 소득역전방지 장치란 기초연금을 더한 총소득이 선정기준선을 넘지 못하게 감액하는 제도이다. 김포시의 이씨 노인(1인 가구)의 소득은 198만원이다. 선정기준을 충족하지만, 소득역전방지 장치 때문에 4만원(202만-198만원)으로 깎여 받는다. 서울시민이 되면 소득인정액이 181만 3330원(198만-16만6670원)으로 줄어 연금이 약 21만원으로 뛴다.    ━  노인일자리 참여해 29만원 벌게 돼     지난해 김포시 노인 인구는 6만 6651명, 기초연금 수급자는 4만1274명이다. 서울시로 편입되면 몇 명이 새로 받고 몇 명이 더 받게 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다만 선정기준 경계선에 있으면 혜택을 보게 될 전망이다. 기초연금 수급자가 되면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휴대전화 요금이 할인된다. 일부 지자체는 노인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김포에 사는 강모(60)씨는 "주민들 사이에서 서울 편입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교통난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며 "기초연금이나 노인 일자리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니 고령자에게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비슷하다. 서울로 편입되면 재산이 있는 김포시 거주자의 소득인정액이 19만 7600원 줄어든다. 이 덕분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한 사람이 수급자가 되고, 기존 수급자의 생계급여가 올라가게 된다. 기초수급자가 되면 주민세 비과세, TV 수신료 면제, 난방비·문화누리카드 지원, 전기·도시가스·자동차검사·상하수도·종량제폐기물 등의 요금이나 수수료가 감면된다.   한편으로는 서울 편입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된다. 김포시나 구리시의 기초연금 수급자가 늘면 다른 지역에서 그만큼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수 있어서다. 노인의 70%에게 지급하게 돼 있어 대상자가 고정돼 있다. 누군가 새로 들어오면 누군가 밀려나게 된다. 기초수급자는 '순증'해서 문제 될 게 없다. 고양·수원·용인 같은 특례시는 서울과 같이 대도시 그룹에 속해 있어 서울로 편입돼도 기초연금 자격에 변화가 없다. 단 기초수급자는 김포시처럼 유리해진다.  서울 국민연금공단 송파지사 상담 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  너무 복잡해 이해하기 힘들어     이렇게 복잡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재산 때문이다. 선진국은 재산을 이렇게 엄격하게 따지지 않는다. 일정선을 정해 컷오프(Cut off)탈락) 기준으로 쓸 뿐 우리처럼 소득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소득 환산을 하니 기본재산액 공제를 하고, 부동산 가격 차이를 반영하려고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으로 3단계 공제를 한다. 너무나 복잡하다. 또 2015년 이후 부동산이 급등했는데 기본재산 공제액은 그대로이다. 기초생보제는 올해 4단계로 세분화해 단계별 충격을 완화했지만, 근본 문제는 여전하다.    기초연금 기본재산액 공제에서 서울과 다른 광역시를 같은 그룹으로 잡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도시 간의 부동산 격차가 반영되지 않는 점도 논란거리다. 성남시 분당이나 판교, 과천같이 부동산 가격이 서울의 변두리보다 비싼 데도 기본공제액이 서울보다 낮아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5년마다 기초연금 제도를 재평가하게 돼 있다.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재산의 소득 환산 방식, 환산 수준(환산율)이 적정한지, 거주 주택을 포함할지, 지역별 기본재산액 공제 수준이 적정한지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권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재산의 소득환산을 없애고 일정 기준을 정해 컷오프 방식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11.15 00:35

  • '맹탕개혁'이라도 고맙다…유족연금 인상, 여성에게 단비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31일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보험료율 인상 목표가 빠져 있어 "맹탕 개혁안" "백지 답안"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이 계획에는 그간 지적받아온 다른 제도 개선안이 들어간다. 유족연금 개선, 일하는 고령자 연금 삭감 폐지가 대표적이다. 유족연금은 특히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  이번 계획에서 유족연금 지급률을 기본연금액의 40~60%에서 50~60%로 올리기로 했다. 유족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나 수급자(연금을 받는 사람)가 사망할 경우 유족에게 일정액의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민간보험에 없는 사회연대 제도이다. 일반적인 국민연금을 받거나 장애연금을 받다 숨지면 유족연금이 나온다. 가입 중 사망해도 나온다. 〈그래픽 참조〉   ■  「 유족연금 개선,삭감 폐지 분석하니 가입기간 짧은 사망자 유족에 혜택 여성 빈곤 감소에 일부 기여할 듯 "이번엔 꼭 법률 개정해 시행해야" 」  신재민 기자    ━  유족연금 수급자의 91%가 여성     유족연금 수급자는 6월 기준 96만 818명이다. 91%가 사망자의 배우자이고 여성이다. 여성을 위한 연금이다. 여성 수급자의 84%인 74만명이 60세 이상 고령자이다. 가처분소득 기준 여성 1인 가구 빈곤율은 55.7%로 남성(34.5%)보다 훨씬 높다(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빈곤통계). 고령 여성에게 유족연금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은 초라하다. 6월 기준 1인당 평균은 33만 8401원. 2021년 9월 겨우 '30만원 고개'를 넘었다. 전체 평균연금액(약 62만원)의 절반 정도이다. 생애평균소득의 8~12%(소득대체율)만 유족연금이 채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자녀 두 명을 둔 미망인에게 최소 40%를 채울 것을 권고하는데, 한국 수준이 턱없이 낮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 유족연금을 손보겠다고 나선 점은 평가할 만하다. 첫째, 지급률을 올리고, 둘째, 가입기간 10년, 19년 경계구간의 충격을 완화했다. 지금은 사망자의 가입기간이 10년 미만이면 기본연금액(20년 가입으로 간주해 산정한 연금)의 40%, 10년 이상~20년 미만 50%, 20년 이상 60%를 받는다. 정부는 이번에 10년 이하는 50%로 올리기로 했다. 11~19년은 매년 1%p 계단식으로 올라간다. 11년 51%, 12년 52%, 19년 59% 같이 세분된다. 월단위까지 고려해서 비율을 더 세분화할 수도 있다. 지금은 9년 11개월 가입자나 10년 가입자가 한 달 차이로 지급률이 10%p 차이 나지만 앞으로 이런 절벽이 없어진다. 또 10년 1개월 가입자나 19년 11개월 가입자의 연금액이 같은데 앞으로 형평성이 개선된다.    유족연금 수급자 61%의 가입기간(사망자)이 10년에 못 미친다. 지급률이 40%라서 연금액이 적다. 이번에 50%로 올라간다. 가령 남편이 9년가량 보험료를 내다(가입기간 9년) 숨진다면 아내는 29만 3360원의 유족연금을 받는다. 기본연금액(73만 3400원)의 40%이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가면 36만6700원으로 7만원 정도 올라간다. 만약 남편이 19년 정도 보험료를 냈다고 가정하면 36만 6700원에서 43만 2700원으로 오른다.     ━  중복연금 삭감 완화 반영 안 돼     유족연금은 19세 이하의 손자녀가 받을 때도 있는데 앞으로 연령기준이 25세 이하로 확대된다. 이번에 아쉬운 대목도 있다. 연금을 받던 중 유족연금이 생기면 유족연금의 30%만 받는다(중복연금 조정). 전문가들이 50%로 올리자고 제안했는데, 반영하지 않았다. 지급률 인상보다 덜 급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번에 유족연금을 일부 손보기로 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박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독일은 가입자가 사망하면 만기 가입(우리는 20년 가입) 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연금액의 55%를 유족에게 지급한다. 본인 연금과 유족연금이 겹쳐도 유족연금을 다 지급하며 두 연금의 합계가 상한액이 넘을 때만 감액한다. 우리보다 상당히 후하다.       ━  "소득있다고 왜 연금 깎느냐" 불만 해소될 듯     이번에 일하는 고령자의 연금 삭감을 없애기로 한 점도 고령자 근로 촉진 차원에서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퇴 후에 안 쉬고 일을 해서 돈을 버는데, 왜 관계도 없는 국민연금을 깎느냐"는 불만이 점점 커지자 이를 반영한 것이다. 연금 수급자의 소득이 전체 가입자 3년 평균소득(A값)인 286만원(근로소득 공제 전 387만원)을 초과하면 국민연금을 최대 50% 삭감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만 8000명의 국민연금 1906억원 삭감됐다. 초과액이 100만원 안 되는 사람이 47.6%이며 초과액의 5%가 삭감됐다. 초과 소득이 60만원이면 3만원 깎인다. 101만~200만원이 20.6%이며 10%를 삭감한다. 초과 소득이 적은 구간에 68%가 몰려 있다. 두 구간의 월평균 1인당 삭감액이 3만 2000원이다.   삭감 이유는 한 사람에게 소득이 집중되는 걸 막자는 건데, 국민연금액이나 근로소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재정 절감액도 그리 크지 않아 불신을 심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국·프랑스 등 연금 선진국도 권한 침해, 노인 경제활동 저해라는 비판이 일면서 폐지(축소)하는 추세다. 유족연금 개선, 국민연금 삭감 폐지는 민주당 의원들도 법률 개선안을 여럿 제출했다. 여야에 이견이 거의 없다. 정부가 5년마다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넣기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달라질까.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11.01 00:29

  • 병원서 5년, 집에 온 50대 "다신 안 가"…예산도 1072만원 절감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요양병원 환자들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중앙포토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부모나 지인 면회를 갔다 나오면서 "나는 저렇게 안 산다"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장기요양실태조사(2020년)를 보면 요양원 환자의 78%는 자녀가 입소를 결정했다. 병세가 호전되면 집으로 부모를 모시겠다는 자녀가 25%에 불과하다. 60세 이상 부부의 31%가 맞벌이를 한다(통계청,2022년). 집에서 돌봄을 받기 점점 어려워진다. 저소득층은 더 취약하다. 지난해 한 달 이상 요양병원에 입원한 의료급여 수급자(주로 기초수급자)는 8만3406명이다. 이 중 44%가 1년 넘었다. 석 달가량 지나면 '병원이 집'이 된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병원에 사는 '사회적 입원' 환자이다. 장기입원 환자 중에 많다.     ━  입원 얼마 안 지나 집 정리     "재입원할 생각이 있나."(기자)   "다시는 안 간다."(정종문씨)  "병원에서 밥도 주고 옷도 주는데 좋지 않으냐."(기자)  "하나도 안 좋다. 갈 생각이 전혀 없다."(정씨)   ■  「 병원=집인 '사회적 입원' 만연 탈병원 프로젝트 1700명 집으로 건강 좋아지고 우울증세 감소 전문가 "탈병원 대폭 확대해야" 」   기초수급자인 정종문(52·광주광역시)씨는 16일 기자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는 2017년 6월 뇌출혈로 쓰러져 우측이 마비됐고 말을 못했다. 요양병원 3곳을 전전했다. 4인 병실의 3.3㎡(1평)도 안 되는 침상에서 5년 살았다. 1년 반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고, 휠체어에 의지해 화장실만 오갔다. 2년 지나 복도에 가끔 나갔다. 다른 환자 신경 쓰느라 TV를 못 봤고 인터넷을 했다. 중간에 집을 정리해 버렸다. 정씨는 "병원이 집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다 구청 의료급여사례관리사의 설득을 받고 지난해 6월 임대주택으로 돌아왔다. 주 2회 반찬이 배달되고, 활동보조사의 도움으로 집 근처 병원에 오간다. 주 2~3회 집 앞 공원에 나가 1시간가량 보낸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씨는 집에 와서 몸과 마음이 좋아졌다. 말을 잘 못 했으나 기자와 대화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 연습을 한다. 신체 움직임이 좋아졌다. 정씨는 "이제는 TV도 맘대로 보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해방감을 즐긴다.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며 "조금씩 정상생활을 회복하고 있고 비로소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매달 36만원가량의 기초 생계비로 생활한다.     ━  탈병원 환자 72% "집이 더 좋아"    정씨의 탈(脫) 병원 프로젝트는 보건복지부의 재가(在家) 의료급여 시범사업이다. 같은 병으로 한 달 이상 입원한 환자 중에서 의료의 필요성이 낮은 사회적 입원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2019년 6월 13개 시·군·구에서 시작해 지금은 73개로 늘었고, 내년 7월 전국으로 확대한다. 4년 동안 1667명이 집으로 돌아갔다. 많지는 않다. 65세 이상 노인이 55.4%, 6개월 이상 장기입원자가 36%를 차지한다. 의료급여 환자는 거의 병원비가 없다. 집으로 가는 환자는 정부가 의료·돌봄·식사 등을 지원한다. 전문청소업체가 집을 정리하고, 냉·난방을 지원한다. 전동휠체어 등의 의료용구, 생활용품 등을 지원한다. 이런 지원에 매달 최고 60만2000원을 쓴다.   정부가 집으로 돌아간 환자 375명을 면접조사했다. 퇴원 결심 이유는 입원할 이유가 없어서(47%), 병원 생활이 불편해서(29%)라고 답변했다. 집에 돌아온 후의 삶에 대해 72%가 만족감을 표했다. 47%는 병원에 있을 때보다 건강이 좋아졌다. 70.7%는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예산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가 986명의 퇴원환자를 분석했다. 요양병원 입원비(월 249만7957원)에서 각종 지원금(160만4585원)을 제하니 89만3372원이 남는다. 연 1072만원의 예산을 아낀다. 정종문씨의 경우 의료비가 92% 줄었다.   의료급여 환자는 152만명에 달한다. 예산(국비 기준)이 2019년 6조4374억원에서 올해 9조984억원으로 급증했다. 요양병원 환자는 질병 중증도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가장 낮은 두 단계 환자의 비율이 32%이다. 이들이 사회적 입원 환자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상태가 급변할 가능성 작고 복지시설이나 집에서 대응이 가능한 상태'를 사회적 입원이라고 규정한다. 일본 일반병상 환자의 36%, 요양병상 환자의 52%가 사회적 입원으로 본다(『사회적 입원 연구』학지사메디컬, 2007년 기준). 한국은 이런 규정이 없다.   요양병원 환자가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중앙포토    ━  "그룹홈 의료서비스 허용해야"    일반환자도 사회적 입원을 많이 한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요양병원 입원환자의 20~30%가 사회적 입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요양병원이 입원 환자(의료급여 무관)를 퇴원시켜서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면 수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2019년 시작했지만, 성과가 미미하다. 병원 인센티브가 적은 데다 요양병원이 퇴원을 바라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다.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집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권 교수는 "집으로 갈 수 없는 사회적 입원 환자가 훨씬 많다. 이들이 공동생활가정·그룹홈·요양원으로 갈 수 있게 이런 시설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법령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숙 강원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급속한 고령화에다 부양 의식 저하 등을 고려하면 노인의 사회적 입원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의료비·돌봄·간병비 등이 불필요하게 증가하고 당사자의 삶의 질이 뚝 떨어진다"며 "집과 병원살이의 삶을 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탈(脫) 병원 사업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10.18 00:39

  • 사실혼 자녀 안 되고, 연 끊은 동생 된다…이상한 존엄사 결정권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지난달 중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가 '연명의료 결정의 사각지대' 심포지움을 열었다. 이날 행사 토론자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11개월째 연명의료를 받는 생후 20개월 영아의 예를 들며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아이는 지난해 11월 생후 9개월 때 30대 친모의 학대를 받아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충남대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 '임종 상태'라는 판정을 받고 혼수상태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아이의 고통을 멈출 방도가 없다.     ━  30만 8923명 존엄사 이행    신재민 기자    길민정 서울시 북부병원 의료사회복지사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사실혼 부부의 안타까운 사례를 소개했다. A씨는 사실혼 관계인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20대, 남편 자녀로 등록)에 의지해 살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아들이 가족인데도 법정 대리 결정을 할 수 없다. A씨에게는 수십 년 연락하지 않은 여동생이 있다. 현행법을 따르려면 여동생을 반드시 찾아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A씨의 인생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데도 중요한 결정을 맡겨야 한다.     ■  「 가족 변화 못 따르는 연명의료 친모 학대로 뇌사된 영아 고통 조카 보호자도 가족 포함 안돼 "법정 대리인제 도입 서둘러야" 」   이날 심포지엄에서 가족이 환자의 뜻을 제대로 대신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일반적인 형태의 가족이 아닌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 같은 문서가 있으면 연명의료를 중단(유보)할 수 있다. 이런 게 없으면 가족 2명이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확인(의사 추정)하면 가능하다. 환자의 뜻을 모르면 가족 전원이 합의한다. 가족은 19세 이상의 배우자·자녀·부모를 말한다. 이런 사람이 없으면 조부모·손자녀가, 이마저 없으면 형제·자매가 대신한다. 지난 5년 6개월 동안 30만8923명이 인공호흡기 치료 등의 7개 연명의료 행위를 중단(유보)하고 존엄사 했다.    신재민 기자  ━  "연락 말라" "알아서 해라"     가족 구성이 점점 복잡해진다. 1인 가구나 독거노인이 급증하고, 연락이 두절됐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다. "알아서 해라" "연락하지 말라"며 의사 표시를 거부하는 이도 있다. 반면 가족 역할을 하는 조카가 있어도 연명의료 결정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사실혼·동성 커플도 법적 권한이 없다.      영아 사건의 경우 5월 법원이 친모에게 징역 4년 형을 선고하면서 친권을 정지하고 관할 구청을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병원 측은 선고 직전 친모에게서 연명의료 중단 동의를 받았다. 당시에는 친모의 친권이 있는 상태라 '가족 전원 합의' 과정에 하자가 없었다. 환자가 미성년자이면 법정대리인(친권자에 한정)이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학대 주범에게 서명받는 게 옳으냐"는 논란이 일면서 동의서가 무용지물이 됐다. 구청은 생명권을 결정하지 못한다. 가정법원의 결정을 구하는 길밖에 없지만, 아직 움직임이 없다. 지금의 연명의료가 아이에게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는 걸까.    조정숙 센터장은 다른 가족 사례를 소개했다. 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뇌사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병원 측은 임종 환자라고 판단해 연명의료를 중단했고 곧 숨졌다. 외국에 사는 자녀의 동의를 받았다. 이메일로 문서를 주고받았다. 중증 지적장애인인 다른 자녀, 이혼한 배우자는 제외했다. 조 센터장은 "가해자가 상해치상에서 상해치사로 혐의가 바뀌었다면서 연명의료 중단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  환자 가치관 아는지 안 따져    서울동부병원 호스피스 완화 의료 병동에서의 한 장면. 중앙포토  길민정 복지사는 '조카 보호자의 비애'를 강조했다. 환자의 형제가 숨졌거나 치매를 앓고 있고 환자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가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조카는 법적 가족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도 대리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가족 2명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의 녹음이나 일기장 같은 객관적·구체적 증거가 없어도 된다. 심수현 서울대병원 법무팀 변호사는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만 있으면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는데,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며 "환자의 평소 가치관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했는지, 진술 시기가 적합하고 신뢰할만한지 등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당한 경우도 있다.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의료진에게 "계속 치료해 달라"고 얘기하고 의식이 없어졌는데, 가족 2명이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센터장은 "나쁘게 말하면 두 사람이 짜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 양심에 호소할 뿐"이라고 말한다. 심 변호사는 "가족 2명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심 변호사는 "현행 법률의 대리 결정권자를 가족으로 한정하지 말고 환자의 평소 선호도와 가치관을 아는 사람을 포함하고, 최선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거나 권한을 포기한 가족, 연락 두절 가족 등은 대리 결정에서 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환자가 지정한 대리인, 임의후견인, 성년후견인 등을 대리 의사 결정권자에 포함하고 이런 이가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가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조정숙 센터장은 "현행 법률에서 규정하는 가족은 '정상적인 가정'으로 제한된다. 그렇지 않은 가족이 느는데 지금의 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법정 대리인을 미리 지정하는 제도가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10.04 00:16

  • "75세 이상 효도검진? 불효검진 될 수 있다" 말리는 의사들 왜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적십자병원 문영수 원장(서 있는 사람)이 19일 40대 환자의 위 내시경 검사를 하고 있다. 이 병원은 80세 이상은 원칙적으로 암 검진을 하지 않는다. 우상조 기자 "이 나이에 뭔 검사를 받으라는 거냐."  경기도 성남시 김모(80)씨는 건강검진 권유를 거절해오다 딸이 또 얘기하자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김씨는 심장 시술을 받아서 주기적으로 심장만 검사를 받는다. 딸(52)은 "다른 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 암 검진 같은 걸 받았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너무 싫어한다"고 말한다.   ■  「 75세 이상 111만명 암 검진 받아 장천공·감염·호흡정지·심정지 위험 위·대장·유방·갑상샘 검진 무용론 "의사상담 후 검진여부 결정해야" 」     ━  "92세 아버지 위·대장 검진 해달라"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 60대 딸이 "아버지가 소화가 잘 안 되니 위·대장암 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의 나이는 92세. 문영수 원장(내과전문의)은 "검진의 목적은 암을 일찍 발견해서 20년 넘게 오래 살게 하는 것인데, 검진을 안 해도 100세 넘게 살 수 있다"며 "검진하다 마취 상태에서 호흡정지, 심정지가 올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설득 끝에 대장 검진은 안 했고, 위는 수면 마취 없이 내시경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이상 무.  박경민 기자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암검진을 받은 75세 이상 노인은 111만7175명이다. 대상자의 39.6%가 받았다. 2018년 92만여명(수검률 38%)에서 2020년 코로나19 탓에 잠깐 줄었다가 다시 증가한다. 두 예에서 보듯 '암 검진은 좋은 것'이라는 효심이 깔렸다. 이번 추석에도 부모님께 수백만 원짜리 검진 패키지를 선물하거나 암 검진을 권유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효도 검진'이 자칫 '불효 검진'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 나이에 뭘"이라는 김씨의 판단은 의학적으로 옳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주최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 포럼이 열렸다. 최윤정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암관리학과 교수(예방의학 전문의)는 '암 검진 하지 마라 5'를 공개했다. 이 중 하나가 '기대여명 10년 이하이면 유방·대장·전립샘암 선별검사 목적으로 암 검진을 하지 않는다'이다. 나머지는 금지 항목은 갑상샘암 초음파검사, 췌장암 선별검사(무증상), 양전자 단층촬영(Pet-CT) 등이다. 선별검사란 병을 확진하려는 게 아니라 의심이 가는 걸 걸러내는 검사를 말한다. 가짜 양성, 가짜 음성이 적지 않다. 폐암 검진에서 양성이 나오면 바늘로 찔러 조직검사를 하는데 이 중 5~50%만 실제 양성이다. 유방은 10%만 진짜 양성이 나온다.    ━  암 검진의 득보다 해가 커   박경민 기자  최 교수는 2021년 기대수명(남성 80.6세, 여성은 86.6세)을 근거로 "75세 이상의 암 검진은 이득보다 위해가 더 크다"고 말한다. 국립암센터의 '암 검진 권고안(2015년)'에도 나와 있다. 첫째, 75~84세 위암 검진의 이득과 위해를 평가할 근거가 불충분하다. 둘째, 70세 이상 유방촬영술은 의사의 판단, 환자 선호도를 고려해 선택적으로 하라. 셋째, 80세 이상 대장암 검진(대변혈액검사)은 근거가 불충분하다. 넷째 폐암은 고위험군에만 저선량 가슴 CT를 하라. 쉽게 말하면 위·대장암은 굳이 할 이유가 없고, 유방암은 사례별로 따져서 하라는 것이다. 폐암은 75세 이상에게 권고하지 않는다. 미국 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 지침에도 75세 이상 유방암 검진은 '근거 불충분'으로 돼 있다. 76세 이상 대장암 검진은 사례별로 따지고, 70세 이상 전립샘암은 '하지 마라'이다. 미국 일반내과학회 지침에는 '기대여명 10년 미만이면 암 선별검사를 권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그런데 국가암 무료검진(위·간·유방·대장·자궁·폐)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 서민아 국립암센터 암검진사업부장은 "폐암 고위험군 외는 국가암검진의 종료 연령(검진을 안 해도 되는 나이)이 없다"며 "99세 할머니에게 '자궁암 검진을 안 받아도 된다'는 말을 못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85세 이상 위암 검진은 오히려 사망률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최 교수는 "내시경 검사를 하다가 구멍이 나거나(천공) 감염될 수 있다. 천공은 수술이 필요한 중증 합병증이다. 내시경 검사에 쓰는 미다졸람·프로포폴 같은 마취제는 저혈압·호흡곤란·의식저하를 야기할 수 있고 간혹 심정지가 오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5월 대한소화기학회지에 한 대학병원의 2004~2020년 16년 치 대장내시경 6만여건을 추적한 논문이 실렸다. 23건의 천공이 발생했고 80대 노인 2명이 숨졌다. 논문은 일반적으로 내시경 합병증이 0.1% 선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  서울적십자병원 80세이상 암검진 안해      국가검진이다 보니 당연히 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온다. 서울 종로구 김정자(77)씨는 코로나 전까지는 유방·자궁경부·갑상샘 등의 국가암검진을 빠짐없이 했다. 아들은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하라고 하지 않느냐. 어머니도 주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암 검진은 10년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다. 조기에 발견해 수술하고 항암제·방사선 치료를 하는데 고령의 노인이 감당할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조건이 맞으면 80세라도 검진해도 된다는 뜻이다.    문영수 원장은 "우리 병원은 최근 80세 이상은 원칙적으로 암 검진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너무 위험해서다. 대신 먼저 진찰해서 위험성을 따진 후 시행한다"며 "나라에서 선심 쓰듯 검진을 제공하지만 이게 결과적으로 어르신과 병원을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윤정 교수는 "평소 다니는 병원의 의사와 상의한 뒤 검진 여부를 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9.20 00:46

  • '금쪽' 기초연금 40만원 인상, 128만명 먼저?…소득기준 보니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이기일 제1차관(앞줄 왼쪽에서둘째), 김용하 위원장(왼쪽에서 셋째) 너머로 '미래세대 일하는 시민의 연금유니온'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은 "명목 소득대체율 대신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리자"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아주 좋은 재원이 된다고 생각해요.”   국민연금공단이 2021년 기초연금 수급자 2000명을 설문조사 했을 때 이런 답변이 나왔다. 기초연금은 65세 노인 70%에게 지급한다. 노인들은 "생활의 안전판" "자녀 같다" "보험이다”라고 표현했다. 어떤 노인은 "기초연금이 안 나오면 엄청난 타격이 와서 자녀에게 손을 벌려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 재정계산위 기초연금 개선안 16년 간 상황 변화 반영 못해 같은 금액으론 빈곤 개선 미약 "하위 계층에 우선 인상해야" 」  올해 기초연금은 32만 3180원이다. 부부는 20% 깎여 51만 7080원이다. 올해 656만명에게 23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2014년 도입돼 노인 상대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 노인의 비율)을 44.5%에서 37.6%(2021년)로 6.9%p 낮췄다. 하지만 저소득 노인이나 중간층 노인이나 금액이 같아서 노인 빈곤 해소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영옥 기자    ━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 해결 못해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이하 재정위)가 1일 공청회에서 개선안을 내놨다. 국민연금 개혁 18개 시나리오에 묻혔지만,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재정위 21차례 회의 중 기초연금을 두 차례 논의했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빈곤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분명해 기초연금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정위 위원 A씨는 "공청회에서 기초연금 개선안을 상세하게 공개하려 했으나 국민연금 개혁안이 묻힐까 봐 피했다. 정부가 10월 국민연금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자세히 담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정위는 기초연금을 인상할 때 저소득 하위 계층에 먼저 올리는 방안을 주문했다. 이 주문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과제와 닿아 있다. 현 정부는 기초연금을 단계적으로 40만원으로 올리기로 약속했다. 기초연금은 2007년 시행한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한 것이다. 당시 지급 대상이 노인의 70%였고, 이걸 16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재정위는 "노인의 경제 상황이 개선됐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면 시의성이 떨어진다"고 진단한다. 과거 노인과 달리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소득·재산이 올라간 점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초고령 노인, 여성, 독거노인의 소득이 훨씬 낮아 빈곤율이 높다. 그래서 재정위가 '저소득 노인 우선 인상'을 제안했다. 저소득의 기준은 뭘까.    ━  소득인정액 0원 노인에 집중 지원    지난 2월 재정위 7차 회의에서 국민연금연구원 최옥금 선임연구위원이 공개한 안에 힌트가 있다. 재정위 A씨는 "위원회에서 검토한 개선안이 최 박사 발표 안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소득인정액이 0원인 노인에게 40만원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128만 4208명이다. 기초연금 수급자의 19.1%에 해당한다. 소득에다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더한 게 소득인정액이다. 이게 0원이라고 해서 소득·재산이 없는 건 아니다. 근로소득에서 108만원, 이자소득에서 4만원, 재산에서 1억3500만원 등을 빼고 산정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수입(월 27만원) 같은 건 소득으로 잡지 않는다. 최 박사는 5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제시했다. 저소득 노인에게 먼저 인상하되 최대치를 지급하고 그 위 계층은 감액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김영옥 기자    40만원으로 올리면 빈곤갭이 32.1%에서 27.6%로, 50만원으로 올리면 23.6%로 크게 줄어든다. 빈곤갭은 상대 빈곤선(중위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금액을 상대 빈곤선으로 나눈 값이다. 이게 작은 게 바람직하다. 40만원으로 올리려면 1조4800억원, 50만원은 2조97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  기준중위소득으로 선정방식 변경    재정위는 또 대상자 선정 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소득 하위 70%'가 기준이다. 여기에 맞춰 소득인정액이 얼마인지 추출해 이 기준 이하 노인에게 지급한다. 노인 증가 속도가 빨라 소득인정액 기준도 가파르게 올라왔다. 1인 수급자의 월 인정액이 2008년 40만원(부부 64만원)에서 2018년 131만원, 올해 202만원(부부 323만 2000원)으로 뛰었다. 소득이 월 300만원 넘는데 기초연금을 지급해야 하나,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또 집값이 비싼 분당·과천 등지에 살면 못 받다가 서울 외곽으로 이사하면 받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래서 재정위는 노인의 70% 대신 선정기준을 먼저 정할 것을 권고한다. 최 박사는 기준중위소득(1인 가구 207만7892원)이 1인 수급자 소득인정액(202만원)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이걸로 고정하거나 물가상승률만큼 올리면 된다. 이렇게 하면 수급자 증가 폭을 낮춰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대신 저소득 노인의 빈곤 완화 효과는 커진다.  정근영 디자이너    기초연금 수급자 설문조사에서 소득 하위 20% 이하 저소득 노인의 4.9%가 연금액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20.7%는 "보통"이라고 했다. 소득 하위 20% 노인의 62%가 생활비 조달 창구로 기초연금을 1순위로 꼽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는 국민연금으로 적절한 노후소득을 준비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저소득 노인에게 더 많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며, 그러면 빈곤 개선에 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9.06 00:26

  • 60세 넘어도 국민연금 낼까 말까…회사가 절반 내는 방안 검토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연합뉴스 경남에 사는 회사원 신모(61)씨는 1년여 전 만 60세가 되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만 59세까지 18년 1개월 보험료를 냈다. 회사 동료 중에는 60세 넘어서도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있다. 신씨는 보험료를 계속 내 가입기간을 늘리는 게 좋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낼지 말지 고민 중이다. 그가 선뜻 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전에는 회사가 반을 내줬는데, 지금은 전액 본인이 낸다고 해서다.     ■  「 국민연금 재정위 연령연장 방안 가입상한·수령개시 나이 올려 69년생 월 연금 60만→73만원 "소득공백 방치,이번엔 고쳐야" 」   60세 넘어서도 일을 하는 신중년층이 크게 늘면서 보험료를 계속 낼지 말지 망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현재 논의 중인 연금개혁 안이 이런 고민 해결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준비 중인 개혁안에는 60세 이후에 보험료를 내게 하되 회사가 절반 지원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22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이하 위원회)에 따르면 60세 넘어서도 보험료를 납부하고, 연금을 받는 시기는 1~3년 늦추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에 맞춰 노후 소득을 늘리고,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려는 시도이다. 재정재계산은 인구·경제성장률 등의 변화를 반영해 5년마다 연금 주머니를 따져보고 개혁하는 법적 과정이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김영희 디자이너   신재민 기자  ━  10여개 개혁안 죽 늘어놓을 듯     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이후 21차례 회의를 열어 지속가능한 재정안정 방안과 소득보장 방안을 논의해 왔다. 보험료 인상안(9%→12%, 15%, 18%), 수급 개시 연령 상향(65세→66세, 67세, 68세), 기금운용 수익률 상향안(4.5%→5%, 5.5%)을 조합해 10여개 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1~4차 재계산 때는 위원회가 2~3개 안을 압축해 냈는데, 이번에는 여러 개를 죽 늘어놓는다고 한다. 다만 이와 별개로 가입 상한 연령(59세)을 올리는 데에는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한 연령 59세는 기형적이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63세)과 3년(60~62세) 벌어진다. 수급 개시 연령은 2013년부터 5년마다 한살씩 늦춰져 왔고, 2028년 64세, 2033년 65세가 된다. 공백기간이 60~64세로 더 벌어진다. 1998년 연금개혁 때 이런 일을 벌여놓고 25년 방치해 왔다. 물론 60~64세에 보험료를 낼 수 있다. 임의계속가입이라는 제도가 그것이다. 연금수급 최소 가입기간(10년)을 못 채웠거나, 이를 더 늘리려는 사람이 이용한다. 다만 직장인일 경우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내야 한다. 회사가 절반을 내지 않는다. 60~64세 임의계속가입자는 51만명(2021년)이다.     ━  우리만 '가입-수급' 연령 달라       위원회 8차 회의(3월) 자료를 보면 '가입상한-수급개시' 연령이 차이 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의 기초연금뿐이다. 일본 후생연금(국민연금), 미국·캐나다·프랑스·스웨덴은 가입 상한 연령이 없거나 수급 개시 연령과 일치한다. 전자가 더 높은 데도 있다. 5년 전 4차 재계산 때 상한 연령을 올리려 했으나 "60세 넘어서도 보험료를 내라는 거냐"라는 반발에 부닥쳐 없던 일이 됐다. 위원회는 60세 이후 의무 가입을 원칙으로 하되 기업 반발을 고려해 노사가 합의하면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단서조항을 넣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상당수 신중년 직장인이 회사의 지원을 받아서 60~64세에 보험료를 계속 낼 가능성이 있다. 노후 연금액을 높이려면 가입기간을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 토대가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신재민 기자  60~64세의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전체 취업자 중 이들의 비율이 2011년 5.18%에서 2021년 8.85%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20대는 15%에서 13.6%로, 30대는 24%에서 19.3%로 줄었다. 청년의 가입기간이 짧아지는 문제점을 상한 연령 연장으로 보완할 수 있다. 또 60~64세 취업자가 127만명에서 241만명으로 10년 새 약 두 배가 됐다. 2021년 60~64세 인구의 32%가 임금근로자여서 보험료를 낼 여건을 갖추고 있다.  위원회는 가입 상한 연령 상향에 따른 연금액 변화를 추산했다. 62년생은 61세, 63~64년생은 62세, 65~68년생은 63세, 69년생은 64세까지 보험료를 내고 59세까지 이미 20년 가입한 것으로 가정했다. 월 소득이 268만원일 경우 65년생은 연금액이 월 64만5000원에서 72만2000~75만4000원으로 늘었다. 69년생은 60만원에서 69만4000~73만4000원으로 늘었다. 수익비(연금 총액/보험료 총액)는 다소 떨어지지만, 소득대체율이나 연금액은 올랐다.   김영희 디자이너  ━  고령화에 수급연령 연장 불가피    위원회는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6, 67, 68세로 늦추는 방안을 내놓는다. 보험료 인상, 기금 수익률 상향만으로 재정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70년 후인 2093년에 기금이 남아있게 하려면 보험료율을 18%로 올려도 부족하다. 기금 수익률을 높이려면 주식이나 대체투자(부동산 등) 등의 리스크가 높은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수급 개시 연령을 선진국(대개 67~68세)처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3월 회의에서 "가입 상한 연령을 올리면 연금액이 올라 소득보장 효과를 낼 것"이라며 "다만 기업이 고령자 고용을 꺼릴 수 있어 저소득자 보험료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평균수명이 느는 만큼 어쩔 수 없이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게 필요하다. 보험료를 많이 올리지 못하면 더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8.23 00:46

  • 암 수술 얼마 뒤 "퇴원하세요"…가족 없는 환자인데, 병원은 왜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한 노인이 서울의 지하철 역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퇴원하라고요? 배가 아프고 땅기는데."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A씨는 병원 측의 퇴원 요청을 받고 이렇게 항변했다. 그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고, 죽을 챙겨줄 사람이 없는데 며칠 더 있으면 안 되냐"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의료적으로 더는 할 게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  「 무대책 퇴원에 방치된 환자들 독거·노인가구 증가 위험 커져 병원 나선 노인 40% 낙상 경험 "퇴원후 통합돌봄 제도화 절실" 」  경남 창원의 독거노인 김모(73)씨는 지난 5월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받았다. 걸을 수 없어 일상생활을 혼자서 할 수 없었다. 자녀는 모두 직장인이라 도울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요양병원행을 택했다. 김씨는 "중환자 신음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한다. 병원비로 600만원이 나갔다. 석 달 만에 집(빌라 2층)을 왔지만, 계단을 내려갈 수 없어 주변 신세를 진다. 김씨를 수술한 병원은 가족 상황, 가옥 구조 등을 묻지도 않았다. 요양병원도 연계해주지 않았다.       ━  한해 노인 70만명이 수술받아      한국의 병원은 치료는 잘한다. 그걸로 끝이다. 퇴원 후 환자의 회복기 삶은 챙기지 않는다. 대형병원은 입원일수 최소화에 골몰한다. 6~10일 입원하면 서둘러 나가야 한다. 병원도 근근이 굴러가는 마당에 어쩔 수 없다. 병실 회전이 수익과 직결된다. 병원이 환자의 '완전 회복'까지 책임질 이유도 없다. 2021년 암·척추 등의 수술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이 약 70만명이다(건강보험공단). 바로 일상에 복귀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퇴원 후 회복까지 통합돌봄이 필요하다. 그런 서비스가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재입원이 많다. 조희숙 강원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외국 논문을 보면 노인은 입원 기간에 활동량이 줄어 퇴원 후 체력·근력이 손상될 우려가 크고, 퇴원 후 6개월 동안 최대 40%가 낙상하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한다. 강원대 의대 분석 결과, 국내 60세 이상 환자가 퇴원 후 90일 동안 이런저런 병으로 재입원하는 비율이 22%에 달한다.     일부에서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다. 조희숙 교수팀(환자중심 전환기 케어 연구그룹)은 한림대 춘천성심병원과 공동으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퇴원 환자 203명에게 통합돌봄 서비스 연구를 진행 중이다. 108명은 서비스 제공자, 95명은 미제공자(대조그룹)이다. 입원 이틀 후 환자와 가족을 상담해 퇴원계획을 세운다. 흡입기 사용법, 호흡재활법, 운동법 등을 교육한다. 약 복용, 스트레칭 앱 활용을 돕는다.    지역의 복지기관 연계가 중요하다. 집에 갈 형편이 못 되면 요양병원에 연계한다. 흡연자는 금연클리닉으로 연계하고 금연 패치나 껌을 지급한다. 동사무소가 제공하는 병원 동행 서비스, 도시락 배달, 단기 가사지원이나 신체 수발 서비스 등을 연결해 준다. 보행이 어려운 환자는 방문 진료를 연계한다. 퇴원 이틀 이내에 집이나 요양병원으로 찾아가 잠을 잘 자는지, 약을 제대로 먹는지, 식사를 빠트리지 않는지, 지역사회 연계서비스가 잘 작동하는지 등을 확인한다. 네 차례 전화 상담하고, 1개월 후 다시 집을 방문한다.     ━  통합돌봄 하니 병세 27% 호전    차준홍 기자   그랬더니 호흡곤란 지수가 27% 줄었다. 서비스 미제공자는 외려 7% 늘었다. 흡입기 숙달 정도가 9.4%(미제공자 1% 감소) 향상됐다. 운동 실천 환자가 20명 늘었고(미제공자 6명 감소), 질병 관리 자신감은 5%(미제공자 1% 감소) 커졌다.     독거노인 이모(82)씨는 퇴원 후 독립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요양병원 입원을 도왔고, 여기서 나온 후에는 주민센터의 노인돌봄서비스를 받게 했다. 홍모(81)씨에게 가정용 산소호흡기 사용법, 운동법을 교육했더니 숨 차는 증세가 크게 줄었다. 한 노인은 "경사가 급하지 않은 언덕길 걷기를 알려줘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노인은 "자식도 집에 못 오게 하는데 간호사가 오는 게 귀찮았는데, 이런저런 교육을 해주니 좋다"고 말했다.     퇴원환자 통합돌봄 서비스는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이 일부 환자에게 제공한다. 서울대병원은 2020년 심각한 실어증을 보이는 뇌경색 퇴원환자(86·여)를 교육하고 약물을 조정했다. 재택 화상 진료를 나가다 중소병원으로 연결했다. 보건소의 방문재활 서비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상향 신청, 뇌병변 장애 등록, 재난적 의료비 지원 신청, 소방청 119 안심콜 서비스 등을 연결했다. 이렇게 했더니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29% 개선됐다.     ━  장기요양등급 받기까지 석 달 공백    ━       손기영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부 퇴원환자에게만 가정간호 서비스가 제공된다. 퇴원 후 한 달간 환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블랙박스와 같은 상태에 놓인다"고 말했다. 유애정 건강보험연구원 통합돌봄연구센터장은 "퇴원 후 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되는 데 한 달 걸린다. 그 기간에는 아무것(서비스)도 없다"며 "고관절이나 대퇴부 수술을 하면 요양병원 외는 갈 데가 없다. 틈새를 채울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숙 강원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조희숙 교수는 "입원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리셋(Reset) 기회이다. 상당수는 회복하지 못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다 신체 기능과 삶의 질이 바닥까지 떨어진다"며 "한국의 경제 수준에 맞게 퇴원환자 돌봄서비스가 제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사회복지학과 오델리아 리 교수는 "미국에서는 환자를 중심에 두고 퇴원 후 병원-집-요양원 간의 환자 전환(이동)이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이뤄지게 돕는다. 재입원을 예방하고 웰빙을 증진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8.09 00:50

  • 연금공단이 왜? 文정부 퇴짜놨던 '이재명표 청년연금' 되살렸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지난달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을 위한 국민연금 개혁 토론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만 18세가 됐을 때 한달 치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가 내주는 소위 '이재명표 청년국민연금'이 다시 불이 붙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018년 경기도지사 시절 추진하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몰려 무산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초대 복지부 장관인 박능후 장관의 반대에 부닥쳤다가 5년 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불씨를 되살린 데는 국민연금공단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이다. 이 연구원 정인영 부연구위원은 지난 4월 중순 국민연금 개혁 논의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의 11차 회의에서 사각지대 해소 방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이런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자 이재명 대표가 23일 SNS에 "서둘러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  「 한달치 청년보험료 대납 논란 연금개혁회의에 대책으로 언급 이 대표 "논의 시작하자" 가세 전문가들 "정공법 아냐" 반대 」     ━  한달치 보험료 내면 추납,장애·유족연금 혜택    '18세 보험료'는 기발하면서도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이 지사는 만 18세가 되는 경기도 청년의 한달 치 연금 보험료를 내주려 했다. 청년국민연금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생긴다. 한 달 내고 죽 안 내다가 나중에 미납 보험료를 한 방에 낼 수 있다(추후납부). 보험료를 낸 적이 없으면 추납이 불가능하다. 18세 이상~60세 미만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데, 18~27세 미만은 학업·군복무 시기인 점을 고려해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적용제외자). 그런데 한달 치 보험료를 내면 (임의)가입자가 돼 다치거나 사망할 경우 장애연금이나 유족연금 혜택을 본다. 추납은 원래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이직, 사업중단, 건강 악화 등으로 보험료를 못 내게 됐을 때 나중에 내게 해서 노후연금 구멍을 메우자는 취지에서 1998년 4월 도입됐다. 노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중고령층을 위한 제도이다. 당시 김영록 전남지사도 비슷한 복지를 추진했다.    김영옥 기자  ━  박능후 장관 "사회보장 원칙에 어긋나"    청년연금은 일 할 때 보험료를 내서 노후에 연금을 받는 사회보장의 취지와도 거리가 있다. 그래서 박능후 장관은 2018년 8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회보장제도의 근본 원칙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도 "합법적으로 막을 순 없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 시각이 곱지 않다는 걸 인식해서 수정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 지사의 정책은 각각 도의회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2021년 2월 '생애 최초 국민연금 가입 청년 연금보험료 지원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45만명가량의 청년에게 한달 치보험료(약 9만원)를 내준다는 내용이다. 연평균 405억원이 든다. 진도가 나가지 않고 묶여 있다.   득표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2018년과 달리 이번에는 청년 대책 차원에서 튀어나왔다. 정인영 부연구위원은 올 4월 회의에서 "청년들은 재정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신도 있지만, 급여 수준이 낮아서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에 생활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많다"고 진단했다. 그는 "18~27세 청년층의 국민연금 적용제외 비율은 53%로 다른 연령층보다 2.5~3배 높다"며 "생애 첫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예를 들어 18세가 되면 모든 청년에게 첫 1개월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여 강제 가입시키는 형태를 생각해 보았다. 그 이후 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부분은 추납제도를 통해 가입기간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사각지대 해소 방안을 논의하던 중 나온, 그리 비중이 높지 않은 제안이었다.    ━  복지부 "연구자의 개인 의견 표명한 것"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대표 정책인 청년연금이 논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반응했다. 23일 페이스북에 "국가가 청년들에게 생애 첫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한다면 사회적으로 국민연금 조기 가입을 유도하고, 가입 기간이 길어지면서 연금 수령 혜택이 늘어나 청년층의 ‘연금 효능감’도 높일 수 있다"며 논의를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보건복지부가 즉각 나서 "국민연금연구원 정인영 부연구위원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옥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18, 19세 국민연금 가입자는 2017년 10만553명에서 2021년 6만6826명으로 줄었다. 다만 임의가입자는 같은 기간 865명에서 2021년 6551명으로 크게 늘었다. 부모가 대신 보험료를 내주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한달 치 보험료만 내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연금에 여전히 비판적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은 소득이 있을 때 보험료는 냈다가 노후에 연금을 받는 제도인데, 18세에게 한달 치를 내주고 추납할 수 있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연금 납부 상한 연령(만 59세)을 높이고 각종 크레디트(가입기간 추가인정)를 늘리고 청년노동을 활성화하는 게 청년 사각지대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18세 보험료 국가 납부는 의무는 없고 혜택만 보게 하는 것이며 여유 있는 사람만 나중에 추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국고를 국민연금에 쓸 게 아니라 어려운 계층의 빈곤 탈출을 돕는 데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국민연금=2018년 이재명 경기지사는 청년 보험료 9만원을 내주고 10년 후 과거 (미납)보험료를 추납하면 노후에 7800만원의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순례 의원(자유한국당)은 "50조원이 연금 재정에서 나간다. 본연의 취지를 뒤엎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7.26 00:50

  • 노인은 없다? 자녀가 보낸 요양원, 호전돼도 나가기 쉽지 않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 한 요양원에 입소한 노모와 자녀가 손을 꼭 잡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성장을 거듭해 등급을 받은 65세 이상 어르신이 100만명을 넘었다(2022년 102만명). 노인의 11%이다. 85세 이상 노인만 따지면 37%가 이용한다. 자녀의 부모 부양·돌봄 기피 세태와 맞물려 '사회적 효'를 담당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다 생을 마감하는 노인이 13만여명(2021년)에 달한다. 뇌졸중·파킨슨병·치매 등의 노인성 질환 탓에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노인을 위한 복지로 자리 잡았다.    ■  「 장기요양보험 15년 빛과 그림자 수급자 100만 돌파,만족도 80%대 본인이 요양원 입소 결정 5% 불과 "돌봄가족 지원해 시설행 막아야" 」  신재민 기자  수급자가 되면 요양시설에 입소하거나 집에서 요양보호사·간호사 등의 방문서비스를 받는다. 2020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설 입소자의 만족도는 84%, 방문요양·목욕 만족도는 각각 79%, 85%이다. 꽤 높다. 강은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2일 장기요양보험 시행 15주년 심포지엄에서 이런 성과와 보완할 점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보완할 점이 자기결정권 보장이다. 지금은 미미하다. 이 서비스를 이용할지, 어떤 서비스를 받을지 스스로 결정한 비율이 8.6%에 불과하다. 68.8%는 자녀(손자녀 포함), 11.7%는 배우자가 결정한다. 특히 요양원 입소 본인 결정 비율은 4.7%로 떨어진다. 자녀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신재민 기자    ━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하소연     혼자 살던 85세 파킨슨병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에만 겨우 오갈 정도였다.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와서 수발을 들었고, 저녁에는 자녀들이 식사 등을 챙겼다. 자녀들은 늘 낙상을 걱정해 요양원 입소를 권했다. 이 여성은 완강히 거부하다 거의 반강제로 입소했다. 다행히 요양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단다.   자녀에게 떠밀려 요양원에 들어온 80대 남성은 6개월 만에 퇴소했다.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다른 입소 노인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나가게 해달라"고 계속 자녀를 졸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폭력 성향까지 나타나자 결국 퇴소했다.   노인에게 요양원 환경은 매우 낯설다. 한 유튜버가 소개한 사례는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약간의 치매 증세에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90대 남성은 탁 트인 4인 병실, 한 평도 안 되는 자기 공간(침대) 등의 낯선 환경에 처하자 잠을 거의 못 잤다. 식탁의 무표정한 다른 입소자들도 그를 당황케 했다. 사소한 일로 옆자리 노인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는 "내가 있을 데가 아니다"라며 하루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허사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체념했다. 신재민 기자  김후남 상록수 실버타운 원장(대구 달서구)은 "요양원에 스스로 입소하는 어르신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입소 노인의 상당수는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일각에서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요양원에서 평균 2년 8개월 산다. 5년 넘는 경우도 16%에 달한다. 강은나 연구위원은 "장기요양 이용자의 60~70%가 의사 표현 능력이 있다. 그런데도 장기요양 서비스 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본인에게 여러 정보를 주고 치료를 어디서 받을지, 어떤 걸 받을지, 어디서 돌봄을 받을지, 누구한테 받을지 등을 결정하게 도와야 하는데도 자녀들이 이런 걸 묻지도 않고 '어머니 (요양원이나 병원에) 가야겠어요'라고 말한다. 환자의 결정권이 무시된다"고 말한다. 강은나 위원은 "연명의료 중단 시기에만 자기결정권을 보장할게 아니라 장기요양 단계로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후남 원장은 "혼자서 밥을 챙기지 못하거나 낙상 가능성이 큰 노인이 입소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며 "요양원의 수준이 많이 좋아져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개선됐고 운영도 투명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요양원을 선택하는 노인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요양시설이나 노인복지주택에 들어갈 의향이 있는 노인이 31.3%에 달한다(2020년 노인실태조사).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  1인가구 재택돌봄 확대 절실     요양원에 입소했다가 집으로 돌아가 재가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6%(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정부의 실태조사에서 "수급자 건강이 호전되는 경우 집으로 모실 의향이 있나"라고 가족에게 물었더니 74.6%는 "없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74.4%)'였다. 자녀가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돌보는 게 절대 쉽지 않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건강이 나빠져 자기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할 경우 자녀가 돌봐야 한다고 강제할 수는 없다"며 "왜냐하면 자녀는 직장에 나가야 하고, 부모 돌봄을 두고 자녀 부부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다. 자녀도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나 위원은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확대하려면 장기요양 대상에 들기 전에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당사자 의사를 좀 더 반영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앞으로 혼자 사는 장기요양 대상자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요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며 "재가급여 이용시간을 늘리고, 식사와 영양, 외출 등을 지원하며 방문진료나 비대면 진료 같은 재택의료 서비스를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가 노인이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돌봄 가족 휴식 지원, 단기 보호 확대, 재가 노인 방문 상담 확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7.12 00:46

  • "의식 없으면 보내줘" 환자 요청…의사는 "호흡기 못 뗍니다", 왜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중앙포토 60대 폐암 환자 A씨의 암세포가 뇌·간·림프샘 등으로 전이됐다. 항암치료·전뇌(全腦)방사선치료 등을 수차례 받았다. 그래도 병세가 나빠져 의식이 떨어지고 전신 경련 증세를 보여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기도(숨길)를 유지하기 위해 기관삽관 후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검사에서 뇌와 뇌막 전이, 간질 발작 등이 확인됐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3주가량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의료진은 말기로 판단해 추가 암 치료나 중환자실 치료가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관절개(목에 기관과 통하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 관을 삽입)를 해서 간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요양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다.    ■  「 연명의료중단 5년…곳곳 갈등 말기-임종기 딱딱 불명확한데 임종과정에만 중단 가능 "구분 없애 환자 고통 줄여야" 」     "의식 없이 누워만 있으면 그때는 편히 보내줘."   A씨는 평소 이렇게 갈망했다. 그의 아내는 그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요양병원으로 가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누워만 있을 텐데, 그건 의미가 없다. 간이 호흡기를 단 환자는 호스피스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며 의료진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했다. 난감한 건 의료진이었다. "현행법으로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없어요."    의료진은 "말기 암이긴 하지만 활력 징후(체온·심장박동 등이 정상)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고, 중환자실에서 나가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으면 얼마 동안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고 보호자를 설득했다. 남편의 뜻을 존중하려는 아내, 법 준수를 내세운 의료진,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었다. 중환자실의 밝은 불빛, 기계음, 인공호흡기의 고통 속에 며칠이 흘렀다. 환자는 일주일가량 지나자 급격히 나빠졌고 이내 숨졌다.     ━  내뜻대로 마무리하려면 병원에 가면 안 돼    의료진이 거부한 이유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때문이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말기와 임종과정으로 구분된 현행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말기는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된다는 진단이 나온 환자를 말한다. 임종과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악화해 사망이 임박한 상태이다. 말기환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연명의료 결정은 임종환자일 때만 가능하다.     법이 애매해 윤리 갈등이 빈번하게 생긴다. 이런 경우 의료기관윤리위원회(법조계 등 외부인 참여)에서 논의한다. 서울대병원 임재준·유신혜 교수 연구팀은 2018~2021년 위원회 안건 60개 사례를 분석해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JKMS) 최근호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 중 40건이 임종과정에 접어들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연명의료 중단(유보)을 두고 의료진과 보호자, 보호자와 보호자 간에 의견이 충돌했다는 뜻이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에게 물었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 A씨의 상태가 어땠나.  신체 활력징후가 있어서 말기환자로 볼 수밖에 없었다.   환자 아내 요구 거절 이후 얼마 안가 숨졌는데 왜 임종환자가 아닌가. 결과적으로 그리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시 '수일 내 사망'이라는 의학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말기환자와 임종환자가 칼로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아내 요구대로 했다면.  법 위반이다.   연명의료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병원에 오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집에서 감당할 수 없으니 병원으로 올 수밖에 없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  말기-임종기 구분 외국엔 없어    연명의료 중단제도(일명 존엄사)가 시행된 지 5년 지났다. 27일 현재 29만702명이 중단(유보)하고 세상을 떴다. 연명의료 행위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며 유보는 이런 걸 아예 시작하지 않는 걸 말한다. 5년 새 품위 있는 삶의 마무리를 바라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국민신문고·국민생각함이 지난해 9,10월 6200명에게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물었더니 47.7%가 '말기환자까지 중단이 가능하도록 허용해야'라고 답했다. 18.1%는 '말기 이전에도 허용해야'라고 답했다. 지금처럼 '임종환자에게 허용'은 34.2%에 불과했다. 중단 시기를 앞당기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하지만 현행 법은 사회적 인식 변화를 담지 못한다. 유신혜 교수는 "말기 단계에서 연명의료 중단(유보)을 요구하는 사람이 늘지만 반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고윤석 교수는 "말기와 임종과정으로 구분하다 보니 말기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우선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 임종과정이라는 판단이 나오면 중단한다. 연명의료에 노출돼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 교수는"말기와 임종과정을 구분하는 나라를 외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도 "현행법은 연명의료 중단에만 맞춰져 있다. 연명의료 결정 이행자의 90%가 유보한 경우인 점을 감안하면 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고윤석 교수는 "현행 법률에서 '임종과정 환자'를 삭제하고, 말기에서 연명의료 결정을 이행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되면 A씨의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거나 제거할 수 있다.    환자단체는 신중하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 후 경제적 이유 등으로 남용 사례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연명의료 결정 이행 시기 확대를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6.28 00:48

  • '약 34개'를 밥처럼 먹는 할머니…정작 중요한 약은 빠졌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지난 5월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두 마리의 강아지와 지내는 한 노인이 약 봉지를 만지고 있다. 언뜻 봐도 약이 많아 보인다. 연합뉴스 경북에 사는 독거 여성 A(77)씨는 당뇨병·심부전·과민성 대장증후군·위식도역류병·경추간판장애 등을 앓고 있다. 대학병원 2곳, 동네의원 3곳에 다닌다. 대학병원에서 통증조절·당뇨병·심부전증 등의 6개 약을, 동네의원에서 고지혈증·과민성대장증후군·감기 등의 약 11개를 타서 먹는다. 출처 불명의 기침감기약 등 3개,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약(잇몸약·진통제·변비약 등) 6개, 홍삼·양파즙·벌꿀화분·아마씨 등 건강기능식품 8개를 먹는다. 모두 34개이다. A씨는 설사·변비가 반복되자 마음대로 약을 먹었고 복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는 처방약과 일반약을 동시에 먹었다. 건강보험공단이 여러 약물 관리사업의 일환으로 A씨와 약사회를 연결했다. 건보공단 한주성 과장(약사)은 "A씨가 한 번에 8~10개의 약을 먹었고, 어떤 때는 4~5개를 더 먹었다. 건기식도 8개를 먹었다"며 "밥보다 더 배부를 것 같다"고 지적했다.    ■  「 약 한뭉치 복용 노인 117만명 10~30개 약을 하루 7회 복용 낙상·의식소실로 급격히 쇠약 "의사의 약물정리 지원 절실" 」   지역약사회 약사는 A씨에게 "배가 아프면 의사에게 변비약을 바꿔달라고 요청해라"고 주문했고, 약을 바꿨더니 복통이 줄었다. 요통약(일반약) 복용은 중단했다. 정작 필요한 심장병 약 2개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먹지 않았는데, 꾸준히 먹게 됐다. 동네의원 2곳은 안 다니게 됐다. 약 6개, 건기식 2개를 줄였다. A씨 집에는 짜 먹는 위장약을 비롯, 유효기간이 경과한 약이 10개 넘게 있었다. 이런 것도 수시로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박지영 건보공단 만성질환관리실장은 최근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이사장 김용익) 주최 국회 토론회에서 '다제약물 관리사업 경험과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A씨 사례를 공개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을 먼저 찾는다. 아프면 약으로 우선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최근 퇴원한 환자는 "오전 7시, 8시, 아침식사 후, 점심 직후, 오후 4시, 저녁 직후, 자기 전에 약을 먹는다"고 소개했다. 건보공단은 만성질환 환자가 10개 이상 뭉치 알약을 60일 이상 먹는 경우를 여러 약물 복용자로 본다. '뭉치 복용자'는 지난해 117만5130명이다. 매년 는다. 20개 넘게 먹는 사람이 약 3만명이다. 75세 이상 환자 중 뭉치(약 5개 이상 90일 이상 복용) 복용 노인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7%이지만 한국은 70.2%이다.     ━  소득 높을수록 뭉치 약물 더 복용    김영옥 기자  소득이 높을수록 많다. 117만여명을 건강보험료 1~10분위(10분위가 가장 높음)로 나눴을 때 10분위, 9분위, 1분위 순으로 많다. 2분위에서 10분위로 올라갈수록 뭉치 복용자가 증가한다. 고소득층(8~10분위)이 저소득층(1~3분위)의 2.3배에 달한다. 건보공단은 "고소득층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의료 쇼핑'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혼자 사는 사람도 26%에 달한다.     뭉치 약 복용의 대표적 부작용은 신체와 인지 기능 저하, 약물 상호 부작용 등이다. 제주대병원 한지윤 팀장과 박은옥 제주대 간호대 교수 연구(노인 285명 대상, 노인간호학회지 게재)에 따르면 하루 5개 이상 약을 먹는 노인의 72%, 3~4개 약 복용자의 54%가 낙상 경험이 있었다. 안 먹는 사람(18.9%)보다 월등히 높다. 건보공단은 부적절한 여러 약물을 복용하면 입원·사망·응급실 방문 위험이 1.32~1.35배 높다고 경고한다. 정희원 교수는 "컨디션이 나빠져 응급실에 실려 가거나 낙상·요로감염·소변 막힘·의식소실·섬망 등이 찾아오고 급격히 노화가 진행돼 요양병원 신세로 전락한다"고 경고한다. 어떤 노인은 '노인 부적절 약제'인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약과 삼환계 항우울제 약 등을 먹고 심하게 졸림 증세를 겪다가 낙상해 고관절이 골절됐다.  김영옥 기자  또 다른 부작용은 약이 약을 부르는 '처방 폭포(prescribing cascades)'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노인의 부적절한 다약제 사용 관리 기준 마련' 보고서를 보자. B(82)씨는 전신이 쇠약해져 석 달 간 체중이 5㎏ 빠졌다. 골다공증으로 인한 척추 압박골절, 다리 부종(부은 상태) 등으로 휠체어 신세를 졌다. 심장비대증도 앓았다. 압박골절 통증을 줄이려 처방한 소염진통제 때문에 폐에 거품소리·쌕쌕거림 증상이 생겼다. 다른 병원에서 천식약을 처방하자 다리 부종이 악화했고, 소변이 줄어 이뇨제를 투여했다. 그러자 전해질이 악화하고 전신상태가 크게 나빠졌다. 다른 데서 영양제를 주사하니 부종이 더 나빠졌다. 진통제를 마약성 진통제로 바꾸고 천식 흡입기 약 등을 중단하면서 호전됐다.  경북 77세 여성 집에서 수거한 유효기간 지난 약. 열 가지가 넘는다. 사진 건보공단    ━  줄이는게 능사 아냐,적정관리 중요     약을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그렇다고 복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부작용이 있어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광준 신촌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무조건 약을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의료진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상태에 맞게 약이 중복되지 않아야 하고, 부작용을 고려해 적절하게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노인전문 약사제도를 도입하거나 노인 포괄평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희원 교수는 "20~30분 노인 환자를 자세히 진료하면서 약 이력을 정리·조정하고 교육할 수 있게 수가가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익 이사장은 “노인의 다제 약물을 관리하려면 의사와 약사가 환자 집을 방문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진다. 의사와 약사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단골약국·단골약사를 두고 환자 복약정보를 일원화해서 관리한다. 대만은 메디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의사가 환자 기록을 조회해서 치료하고 처방한다. 약사도 조회해 조제와 상담에 활용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6.14 00:46

  • "치매 아내 욕창, 싹 사라졌어요"…팔순 남편 웃게한 이 의사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오른쪽)과 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찾아 진료 하고 있다. 이 원장은 매주 이 환자 집을 방문해 진찰한 뒤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한다. 사진 서울신내의원 "너무 편리합니다. 오늘도 왔다 갔어요."   서울 중랑구 A(81)씨는 26일 오후 기자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의사가 집으로 오니 너무 좋다"고 여러 차례 반복했다. A씨 의사가 집으로 오기 전에는 일주일마다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고 한다. 거동을 못 하는 치매 환자 아내 B(78)씨를 휠체어에 앉혀 집 근처 병원으로 10분가량 걸어갔단다. 1년에 한 달가량 입원하곤 했다. 이제는 왕진 의사 덕분에 이럴 일이 없다. 그의 아내는 10년째 치매를 앓고 있다. 서서히 증세가 나빠져 2년 전 거동을 아예 못하게 됐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가끔 헛소리한다. A씨는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근육이 굳지 않게 쉼 없이 팔다리를 주무른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아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A씨는 "왕진 의사 선생님 덕분에 이제는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아내에게 이상 징후가 있으면 딸이 왕진 병원의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해결한다.     A씨는 요양보호사가 오는 오전 8~11시 하루 딱 3시간동안 집 주변을 걷는다. 기자가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걱정하자 그의 대답. "우하겠는교." 그는 선잠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아내가 잘 자는지, 이불을 덮고 있는지 수차례 확인하고 체위를 바꿔준다. 그는 "나를 보고 시집 왔는데, 어떡하겠느냐, 책임져야지"라고 말한다. 그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심장병 환자이다. 당뇨병도 있다.     와상환자의 최대의 적은 욕창이다. A씨의 아내도 심했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대한재택의료학회 대외협력이사)이다. 이 원장은 매주 방문진료를 나온다.  26일 왕진 때 소변줄을 갈고 뇌 영양제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했다. 이 원장은 "와상환자는 식사를 하다가 사레가 들면 폐렴이 생길 수 있다. 청진기로 숨소리를 확인하고 열이 안 나는지, 소변줄이 막히지 않았는지 반드시 확인한다"고 말한다.      ━  환자 대변 기저귀 가는 의사     이 원장은 8개월 전 B씨 방문진료를 시작했을 때 대변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변을 욕창 부위에 묻히지 않는 법, 운동법, 체위변경법 등을 교육하고 소독·약물치료를 병행했더니 5개월여만에 욕창이 사라졌다. 이 원장은 A씨 부부가 1년 전 부산에서 상경했고, 근처에 딸이 살고,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긴다는 등의 소소한 가정사를 꿰고 있다. 주치의와 다름없다. 이 원장은 "환자 환경에 맞춰 치료 계획을 세우고, 어떨 때는 공공기관의 복지 자원과 연계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환자가 의료·복지 서비스를 거부해 구청 담당자에게 연락했고, 설득 끝에 요양원에 입소시켰다.       방문진료 또는 재택의료에 참여하려는 의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병원에 오기 힘든 환자가 급증하자 관심이 늘어난다. 정부가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다양한 형태의 '찾아가는 의료서비스'를 내놓는 점도 의사의 관심을 끌어낸다. 복지부가 최근 일차의료 방문진료(왕진) 의사 신청을 받았더니 동네의원 349곳, 한의원 1578곳이 신청했다. 1년 전 3차 공모 때 동네의원은 200곳이, 한의원은 2년 전 1348곳이 신청했는데, 이번에 크게 늘었다. 동네의원 1~4차 신청기관 중 동네의원 858곳, 한의원은 2802곳이 방문진료에 참여 중이다. 이번에 신청한 채종걸 동광한의원(서울 동대문구) 원장은 "장애인단체 진료 활동을 해보니 이들이 병원을 선택해서 다니기 힘들어하더라. 노인도 병원에 가기 힘든 사각지대임이 분명하다. 그런 환자와 대화하고 상담해주고, 혈압·당뇨병 관리하고, 화병 환자를 한방의료로 접근하면 보람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입원 23%, 요양원 입소 88% 줄어     환자는 방문진료에 환호한다. 건강보험공단 건보연구원 유애정 통합돌봄연구센터장과 최재우 부연구위원은 2019년 12월~2022년 1월 통합돌봄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한 방문진료를 분석해 SCI급 국제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Directors Association(JAMDA)'에 논문을 실었다. 방문진료를 받은 환자 538명의 입원율이 23%, 요양원 입소율은 88% 감소했다. 집 거주 기간이 8.3일 늘었다. 이 덕분에 진료비가 155만원 줄었다. 서비스에 만족하거나 궁금증이 해결됐다는 응답자가 각각 80%에 달했다.     방문진료를 선호하는 압도적인 동기는 '거동이 불편해서 이동이 어렵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47%가 이 점을 꼽았다. 연구팀은 성인 인구의 0.7%인 27만명이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의료 이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다음 동기로는 편리함, 주기적 건강체크 등이 뒤를 이었다. 다소 이색적인 동기가 나왔다. 바로 '말동무가 돼 준다(4.3%)'이다. 노인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연계한 방문진료 팀이 환자를 찾아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상범 원장은 "거동이 어려운 환자는 야간이나 휴일에도 방문진료가 필요할 때가 있어 야간·휴일 수가를 만들면 좋겠다"며 "본인부담금이 진료비의 30%라서 적지 않은 환자가 이용을 꺼린다.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2023.05.31 00:50